• 로그인

먼 훗날 우리의 감성 구조

- 5분 걸림 -

   
                                <미디어문화학과 오원환 교수>
지난해 겨울에 종방된 <응답하라 1994>는 90년대의 향수를 느끼게 했다. 의상과 소품, 음악,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서툰 로맨스는 20여 년 전의 감성 구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감성 구조(structures of feeling)란 특정 시공간에서의 경험이 당시의 감성과 버무려져 우리 기억 속에 구조화된 것이다. 몇 해 전 MBC의 <나는 가수다>가 20여 년 전후의 노래들로 ‘나가수’ 현상을 일으킨 것도 3~40대의 감성 구조를 자극해 과거의 추억과 아련한 감정들을 성공적으로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20여년이 지난 어느 날, 2014년을 소환시키는 자극에 노출됐을 때 우리는 어떤 감정들을 느끼게 될까?

2014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온 국민에게 4.16 참사는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게 했다. 귀한 생명들이 서서히 죽음의 공포 속에 스러져간 것을 생각하면 분노와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 눈에 보이는 참사의 원인만을 쫓아서 각종 억측과 루머를 양산했던 언론과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아픔을 가슴으로 품지 못했던 정치권의 한계는 사회적 관심을 소진시키면서 국민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는 유민 아빠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 의혹이나 가정사에 대한 폭로 기사는 막장의 세태를 보여주면서 절망감마저 안겨주었다.

이번 참사로 인한 국민적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고,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세월호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들과 해법들을 찾는 국민적 공론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문제가 공론화의 주제가 돼야할 것 같다. 첫째는 간헐적이고 단편적인 논의로는 부족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의 문제다. 강남 일대에 땅이 꺼지는 씽크홀(sinkhole) 현상이 비단 도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개선책 논의와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는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와 일상적 규범들에 관한 사회문화적 차원의 반성이다. 최근 미디어문화학과의 동아리 <Q>에서 ‘29초 영화제’에 영상을 출품했다. 작품 제목은 ‘대한민국에서 착한 아이로 산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세월호 선원의 잘못된 상황판단과 무책임이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교육과 일상의 규범들이 아이들의 자율성을 키우기보다는 순응만을 강조한 것은 아닌지를 우회적으로 묻는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지만, 한국의 교육정책은 교육부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변해왔고, 부모와 학생은 신속하게 순응해야만 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엄친아, 엄친딸’로 호명하는 순응의 아이콘을 개혁해야 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의 어떤 위정자보다도 세월호의 유족들을 걱정하고 따뜻하게 위로했다. 소진돼가던 세월호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우리의 시대적 감성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안타까움과 답답함으로 얼룩졌지만, 교황이 보여준 약자에 대한 애정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위로는 언젠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고마움과 따뜻함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