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구장에서 우리는 그저 투수의 신중함과 타자의 결단력만 본다. 더불어 베이스 사이를 전력질주하다 슬라이딩하는 주자들과 높이 뜬 볼을 외곽에서 아슬아슬하게 받아내는 수비수들의 안타까운 동작들이 간간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기에 매 회마다 투수와 타자에게 수신호를 보내는 벤치의 남자들에게도 시선이 간다면, 이미 야구라는 경기에 상당한 집중력을 보이는 펜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지간한 야구광도 그 모든 그라운드 위의 활동꾼들을 말 삼아, 이리저리 옮기고, 다른 팀과 거래하고 적당한 시점에서 폐기하는 용병술의 다이나믹스를 들여다볼 수 있는 투시술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머니볼』은 바로 그 변화무쌍한 그라운드 위 표면활동의 출렁거림의 이면에서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강력한 그림자의 역학을 파헤치며, 미국식 야구의, 나아가서 자본주의 소비상품으로서의 모든 대중문화 현상의 운영 메카니즘의 한 단면을 제시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의식과 질서에 안주하던 선수들과 감독 및 다른 관계자들의 저항과 대안적 제안들을 극복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명백히 민주적 조정자가 아닌 창의적 선도자를 닮아 있다. 설득하고 타협하기보다 설명하고 집행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담보하는 과학적 근거에 대한 확신이 전제된 이후에 말이다. 이 대목은 최근 비타협적, 선도적 리더십으로 창의성 구현의 모델을 제시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생산적인 독제’의 모델은 오늘날 시장의 요구와 공급간 균형의 최대치를 보장해줄 가장 강력한 장치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어온 바, 『머니볼』은 한 야구구단의 10년전 성공담의 기록을 담은 영화의 형식을 빌어 야구산업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체제와 현황에 대한 일정한 발언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기득권 보장을 위한 거대한 관성의 장치를, 합리성에 기초한 효율의 감행을 통하여 수선하자는 선동이 그것이다.
『머니볼』은 영화적 형식의 면에서도 그 내용의 메시지를 닮고 있다. 2시간 10분이 넘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채우는 것은 등장인물들간의 짧고 긴 언사의 교환이다. 각각의 씨퀀스는 그때그때의 문제상황을 설명하거나, 그것이 다루어지는 방식 및 그 결과를 전하는 업무에 집중한다. 주인공의 정서나 의지에 관객을 동참시키기 위한 반복적이고 단선적인 상황의 조작을 섣불리 시도하는 일이 없다. 여기에 연출자가 의도하는 방향으로의 감상을 자아내기 위한 ‘정서적 지시’를 감행하는 무리도 실천되지 않는다. 그에 따라 감각차원의 외견상 다소 단조롭지만, 그 내적인 간장의 밀도는 매우 높은 씨퀀스의 연속을 관객은 체험하게 되었다. 최소의 자극화로 최대의 지적 밀도를 창출하는 효율의 미덕을 실천함에 있어 영화가 도달하는 경지는 상당하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아론 소킨’의 밀도 높은 각본 속 인물들을, 강렬한 성격의 묘사에 분주한 에드립 동작의 추가로 ‘브래드 핏’과 ‘조나 힐’이 육화해낼 수 있도록, 사건과 인물의 구성과 배치에 있어 날카로운 민감성을 발휘한 ‘베넷 밀러’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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