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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흡입열차

김선주 선임기자
- 4분 걸림 -

먼지흡입열차

                               -최승호


지하철 운행이 모두 끝난 한밤중
캄캄한 지하에서 캄캄한 지하로
먼지 흡입열차가 웅웅거리며 돌아다닌다
아무도 없는 철길에
널려있는 쇳가루와 먼지와 케케묵은 침묵
그것들을 힘차게 빨아들이며
고독한 기관사가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사막으로
텅 빈 해골이 되어 굴러다니고
누구는 시작도 끝도 없는 침묵에 둘러싸여
글을 쓰는 밤
벽돌 같은 언어들도 결국엔
흩날리는 먼지일까
침묵으로 돌아가는 침묵의 눈보라일까
백지에 고요가 내려앉는 밤
나도 먼지 덩어리다 나도 고독한 기관사다
아가리를 벌리고 먼지를 퍼먹으며 공허 속으로 달려간다

지하철 운행이 다 끝난 심야 시간대에 먼지흡입열차가 지하를 돌아다닙니다. 이는 문학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 사실이랍니다. 서울의 지하철 공사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지하철 내의 미세먼지들을 청소하기 위해 ‘먼지흡입열차’(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공식 명칭은 ‘분진흡입열차’라네요)를 연간 몇 차례씩 운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전반부 7행까지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건조한 진술일 뿐입니다. 지하철 운행이 모두 끝난 한밤중이면, 먼지흡입열차는 돌아다니면서 쇳가루와 먼지를 빨아들인다는 것이지요. 주목할 부분은 이 먼지흡입열차가 비단 ‘쇳가루’와 ‘먼지’뿐만 아니라 ‘케케묵은 침묵’까지 빨아들이고 있다는 진술입니다. ‘침묵’을 빨아들인다는 것과, 그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가 ‘고독하다’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전반부에서 겨우 동원된 문학적 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품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이 ‘침묵’과 ‘고독’을 계기로 시적 인식이 확장됩니다. 즉 ‘고독한 기관사’의 행위는 ‘사막에서 사막으로 / 텅 빈 해골이 되어 굴러다니’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이어서 글쓰기 행위로까지 환치되고 있습니다. 지하철 기관사가 한밤중에 지하의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시작도 끝도 없는 침묵에 둘러싸여/ 글을 쓰는 밤”에 화자는 ‘언어’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지하철 기관사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이나 글 쓰는 화자가 언어를 빨아들이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이지요.
과연 “벽돌 같은 언어들도 결국엔 흩날리는 먼지”일지 모릅니다. 글쓰기의 고독한 행위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언어의 ‘벽돌’ 같은 완강함과 ‘먼지’ 같은 흩날림, 이 모순되면서도 충분히 양립하는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글쓰는 사람은 고독한 기관사처럼 침묵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글 쓰는 사람은 “나도 먼지 덩어리다 나도 고독한 기관사다”라는 인식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먼지 덩어리이자 동시에 먼지흡입열차의 기관사이기도 한 것, 궁극적으로 글쓰기 행위가 이와 다르지 않다네요. 이런 점에서 먼지흡입열차는 실재하는 열차이면서 동시에 상상적 비유의 열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흡입의 궁극이, 혹은 글쓰기의 궁극이 ‘침묵’이자 ‘공허’라는 데 이 작품의 진지한 사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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