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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세익스피어라 불리는 20세기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가 쓴 작품 중에 <산시로>라는 소설이 있다. 1908년 아사히 신문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으로, 내용은 규슈에 있는 구마모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에 진학하게 된 주인공 산시로가 급격히 변모해가는 대도시의 새로운 모습을 접하면서 겪는 문명의 충격을 다루고 있다.

산시로는 구마모토에서 동경으로 올라오는 전차 속에서 많은 사람과 조우하게 되는데, 동경 거의 가까운 역에서 그다지 품위 있어 보이지 않는 분위기의 신사를 만난다. 그 신사는 산시로에게 <구마모토보다 도쿄는 넓다. 도쿄보다 일본은 넓다. 일본보다 세계는 넓다> 라고 말한다. 이어서 <세계보다……> 라고 잠깐 뜸을 들이고는 <그 세계보다는 머릿속이 훨씬 넓지. 얽매이면 안 돼. 아무리 일본을 위해 봤자 결국은 편애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역시 소세키는 대단한 문호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내가 자란 곳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전기불이 들어올 정도의 시골이었다. 여차여차하여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 꽤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골에 가면 서울에서 겪은 이야기를 무슨 자랑이나 되는 양 늘어놓곤 했다. 크고 넓은 세상을 알 만큼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면 산시로가 만났던 신사의 말처럼 그때 내 눈에 보였던 세상은 머릿속 세상의 넓이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너도나도 해외여행을 나선다. 해외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오히려 쉬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여행 거리에 비례해 우리들의 머릿속은 과연 넓어졌을까. 자기인식과 자아형성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 능력은? 자기 성취욕구는? 모두에게 묻고 싶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다른 동물보다 뇌가 커서가 아니라고 한다. 독특한 모듈로 구성되어 있는 뉴런이 다양한 자극을 받아 다채로운 방식으로 반응해서 스스로 복잡한 구조를 조직하기 때문에 더 정교해졌고 그것이 다른 동물과의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머릿속에 자극을 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사회적 활동 영역을 넓히거나 책을 읽어 간접경험을 넓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대학생의 경우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마냥 밖으로 돌 수는 없다. 후자를 위해 여러 문인이나 학자들의 빚을 질 수밖에 없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 중반에는 많은 학생들이 김지하나 에리히 프롬, 섬머셋 모옴, 소세키 등의 저서를 읽으며 자기 나름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세우기 위해 힘썼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에게 그런 얘기를 꺼내면 <책 읽을 시간요? ……스펙부터 쌓아야죠> 라는 말을 많이 한다. <재미있게 좋은 곳에 취직하여 돈 많이 벌면 되는 것 아닌가요?> 라는 사고가 지배적인 것 같다.

자아란 태어나면서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다. 경험과 사고를 쌓아가면서 정체성이 중층적으로 쌓여가며 정착되어 가는 것이다. 이럴 때 독서를 통해 얻은 간접경험은 커다란 위력을 발휘한다.

요즘 세월호 사건으로 침례교의 구원파니 뭐니 하는 종교단체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럽다. 사춘기와 청년기에 자아형성에 공을 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미뤄두었던 자신의 자아형성의 과정을 이처럼 위험한 종교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1995년 종말론을 주장하는 신비주의 신흥종교단체인 옴진리교에 수많은 유명대학의 이과 계열 학생들이 신도로 가입하여 이 종교단체가 일으킨 독가스테러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독서의 폭이 좁으면 한 가지 사실을 절대시하게 된다. 눈앞에 놓인 신비주의 사상이 전부라고 믿어버릴 정도로 사고가 정지되어 버린다. 특정한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독서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으로 한정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신의 마음의 근력을 탄탄하게 하여 자신의 인격을 높이고 사고력과 판단력과 문제해결능력을 갖추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이다. 최근의 리쿠르트 잡지를 보면 기업도 자신만의 스토리와 생각이 없는 세태에만 휩쓸려 사는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

대학생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오래되었다. 대학생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 나라의 추락을 의미한다. 올바른 자아형성을 위해 독서를 많이 하다 보면 자신의 인격도 높이고 어수선한 대한민국의 국격까지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일어일문학과 남이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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