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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 해수욕장>해양생물공학과 1001701 고민정

정은해 선임기자
- 6분 걸림 -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꽤 많고 힘든 일들도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다 지칠 때 한 번 쯤은 잠시 모든 일들을 내려 놓고 어딘가로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스트레스에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여행을 떠나보자.

5월 5일 토요일. 충남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 해수욕장. 이곳은 바다 가운데 보이는 섬까지 바닷길이 열리는 곳이라 '답답함'이 뻥 뚫릴 것 같아 이곳을 택했다. 처음 가 보는 곳이기에 여행 전에 교통편과 길, 비용 등을 미리 조사했다. 터미널을 이용하는 법도 있지만 기차를 택했다. 기차가 시간도 적게 걸리고 더 저렴한 이유도 있지만 이른 새벽에도 운행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 만해도 뜻한대로 다 될 것 같았지만 버스는 제 시간에 오지 않았다. 5시 40분에 나왔지만 결국 6시 30쯤 돼서 아무 버스나 타고 시청에서 내린 후 택시를 이용해 군산역까지 갔다. 7시 21분 열차. 웅천역으로 간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는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홀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것! 생각만해도 짜릿하고 낭만적일 것 같았다.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이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천역에서 나오면 슈퍼 앞에서 목적지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탈 수 있으나 이 날의 물때 시간과 안 맞아 택시를 이용했다. 찾아본 요금과 많이 달라 바가지(?) 쓴 듯했다. 미터기 켜고 가자고 말했어야 했나보다.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어울림이 들어있다. 바닷길이 열리는 길은 게나 조개같은 것들을 잡을 수 있는 체험장이어서 사람들이 많았다.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쪼그려 앉아 그저 웃고 있는 아기들, 물이 튈까봐 으악, 재밌다고 꺄르르 웃는 사람들. 시간이 멈춘 듯 잠깐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곳에서만큼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나도 행복했다. 그래서 들뜬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검은 레깅스를 동동 걷어 올리고 바닷길을 걸으러 발을 담궜다. 그 순간 발바닥에서부터 전해져오는 전율에 온 몸이 얼었다. 아직 너무 차가운 바닷물. 걷다보니 발이 없는 듯했다. 조개껍질이나 굴껍질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아 따끔따끔 거리기도 했지만 그저 이 감촉마저 좋다. 혼자여서 그런지 지나가는 이모나 아저씨들이 한 마디씩 하고 가신다. "학생! 그러다 발 다쳐~". 처음보는 분들이 내 발을 걱정해주는 정겨운(?) 바다 풍경에 취해있을 무렵, 해안가에서 싸이렌 소리가 크게 울린다. 물이 차오르고 있으니 모두 나오라는 알림음이었다. 모두들 조급해졌는지 해안가를 향해 빠른 발걸음을 옮긴다.

한참을 걸어 나오니 하얗고 고운 모래가 눈 앞에 펼쳐졌다. 아침엔 없었던 거 같은데 내가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신이 뿌려놓고 가신 듯했다. 푹신푹신 따끈따끈. 평화롭게 흘러가는 구름뒤로 맑은 하늘빛의 하늘을 보니 그대로 누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양 옆으로 볼 것들이 많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 쪽은 모래위에 다리가 놓여져 있는 풍경, 또 한 쪽은 방파제가 있는 풍경이다. 먼저 다리쪽으로 향했는데 가는 길에 땅이 푹 꺼져버렸다. 갯벌이다. 숭숭숭 크고 작은 구멍이 많이 있다. 맨들맨들한 머드 위를 걷는 느낌도 좋다. 머드 위를 걷는데 이상하게 발바닥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저 멀리 모여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보니 이럴수가! 베이고 찢기고 뜯기고 구멍나고. 많은 껍데기들이 내 발바닥을 한 번씩 찌르고 갔나보다. 이제야 아프기 시작하다니. 왠지모르게 아픔이 밀려올 때가 생각났다. 너무 아픈 일들은 나중에 아파오지 않은가.

발을 씻고 신발을 신고 바닷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다리에는 멍게, 개불 등을 파는 이모들이 앉아계신다. 다리 끝에는 저 멀리 바다를 볼 수 있다. 방파제로 가니 또 다른 방파제가 보였다. 2개의 방파제 사이에 어민들의 배가 정착한 항구가 있었다. 사람사는 냄새와 섞인 바다 내음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여기 방파제 길 뿐 아니라 해안가 주변 전체가 횟집과 펜션이 즐비하다. 혼자 여행하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즐거움을 누릴 상대가 없는 게 쓸쓸하다. 그래서 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디선가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인생은 음식남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일까?

저녁이 되니 낮동안 뜨거워 진 해가 이제야 붉어진다. 붉은 해가 저 멀리 수평선에 닿을 듯 말 듯 구름사이로 고개를 내밀 듯 말 듯, 멋진 사진 한 장 찍고픈 내 마음을 애태운다. 찰ㅡ칵. 한 컷을 찍고 바다에 오면 빠질 수 없는 또 하나, 모래 위에 이름쓰기. 이름을 쓰고 사진을 찍으려 할 때 렌즈안에 어린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바다 저 멀리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 했다. 역시 사람은 어울려 살아가는 동물인 거 같다.

어둑어둑 어느 새 밤하늘엔 반짝하는 별들이 찾아왔다. 보이지 않는 물결이 들려주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바다는 내가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했다. 그런 바다를 뒤로하고 근처 장류장에서 웅천역까지 가는 마지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안녕, 바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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