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풍작이었다. 제32회 황룡학술문학상 문학상 부문에 관한 이야기다. 투고작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투고작의 수준은 가히 비약적이라 할 만했다.
올해 황룡학술문학상 문학상 부분의 시 응모는 60명(214편), 수필 응모는 8명(16편)에 이르렀다. 예년에 비해 응모 편수가 눈에 띄게 늘었고 질적 수준 역시 상당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시/수필 부문에서는 시에서 가작 한 편만을 뽑았다. 우선 수필 부문의 경우에는 ‘관찰과 사색’에 충실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 부문의 경우에는 수준급에 도달한 작품이 많았다. 절제된 언어 구사, 세련된 이미지 활용, 시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다양한 수사법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던 점은 예년과 비교할 만하다. 하지만 시적 기교 이전에 삶의 본질을 통찰하려는 진지한 시선이 뒷받침되지 않아 가족 서사의 해체, 파편화된 세계로 인한 불안과 공포, 소외와 단절의식 같은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것을 바라보는 개성적인 시선과 통찰력을 함께 보여준 경우는 드물었다.
올해 시/수필 부문의 가작은 황만복의 「아우슈비츠」를 선정하였다. 이 작품은 근대적 이성의 광기를 상징하는 역설의 공간으로서 아우슈비츠를 소재로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 죄와 욕망, 공포와 불안 등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살아 있음이 악몽으로 기억되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 죽음만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으로 남겨진 상황에서, 과연 서정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황만복의 「아우슈비츠」는 이런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화자 설정이나 종결어미 처리가 다소 미숙한 점,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바로 아우슈비츠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 등이 아쉽지만, 우리 시대의 폭력적 본성에 대한 역설적 인식과 시적 형상화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했다.
소설/평론 부문도 투고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소설은 28명(29편)이, 평론은 5명(5편)이 응모했다. 수준들이 만만치 않았다. 거의 모든 소설이 한 편의 소설을 유기적으로 구성해내고 있었고 문장에서 묻어나는 성찰의 힘 또한 녹록지 않았다. 특히 평론 부분은 모든 투고작이 문학이론에 대한 깊은 식견과 작품에 대한 뛰어난 분석력을 지니고 있었다.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마지막까지 세 작품 사이에서 고민했다. 신동원의 「말의 기원」, 김누리의 「짜요짜요」라는 두 편의 소설과 이성주의 「Let Me In - 조경란의 식빵 굽는 시간과 「학습의 생」」이라는 한 편의 평론. 「말의 기원」은 잘 짜여진 소설이었고 많이 준비한 소설이었다. 삼각관계 또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라이벌 관계를 통해 언어의 소통가능성과 소통불가능성이라는 묵직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 점이 돋보였다. 「짜요짜요」는 감각적이고 활달한 소설이었다. ‘조오련’을 꿈꾸다 바다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애도하는 엄마와 아들의 기묘한 대비가 매력적이었고, 소설의 마무리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은 문제였다. 「Let Me In」은 우리 시대의 문제작가 조경란의 두 작품에서 타자와의 진정한 소통 가능성을 읽어낸 평문으로 작품 안에 흩어져 있는 진리내용을 추출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해내는 힘이 발군이었다. 고민 끝에 신동원의 「말의 기원」을 당선작으로, 나머지 두 작품을 가작으로 뽑았다. 인간의 삶에 가장 본질적인 영역인 언어와 소통(불)가능성 문제를 자연스럽게 소설화해낸 저력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해만 같기를! 아니 매해마다 이런 지성의 축제가 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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