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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의 보물섬-고군산군도-1

정은해 선임기자
- 5분 걸림 -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되면서 대한민국의 놀라운 기술력을 보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군산을 찾아오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 15분 남짓 달리면 새만금 사업으로 곧 육지가 될 넓은 바다와 방조제, 이미 오래 전 육지가 되어버린 군장국가산업단지를 만날 수 있다. 군산과 부안을 잇은 새만금 방조제 중간에는 문화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군산군도가 있다. 지금은 야미도와 신시도가 방조제로 인해 육지화되었고, 지금은 신시도에서 무녀도까지 다리를 놓기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행정구역상 군산시 옥도면에 속사는 고군산군도는 군산에서 50㎞ 가량 떨어진 서쪽 바다 한 가운데 있는 63개의 섬으로 금강, 만경강, 동진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다. 고군산군도는 섬들이 둥근 형태로 모여 있으며, 그 가운데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는 16개, 나머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고군산군도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 마치 산에 겹겹이 둘러싸인 커다란 호수에 와 있는 듯한 아늑함이 느껴진다.
고군산군도는 60개 소 이상의 문화유적이 남아있다. 그 흔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줄곧 이어져 왔으며 유적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섬 안에 자리한 문화유적은 시굴 내지 수습조사가 이루어진 선유도 조개무지 2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표조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조개무지가 가장 많이 남아있다. 이는 바다를 생업으로 삼아 살아온 섬사람들의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가장 좋은 유적이다. 이 중 가장 잘 남아있는 덕산도 조개무지는 마치 조개껍질로 이루어진 언덕처럼 보이는데,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켜켜이 쌓인 조개무지 속에 토기편 등을 포함하고 있어 유적의 형성과정과 시기별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다. 삼국~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수많은 고분들이 섬 곳곳에 남아있기도 하다. 고분들은 대개 돌로 만든 돌방무덤 또는 돌덧널무덤으로 여겨지며, 도로를 내면서 생긴 절단면에 회곽묘가 훤히 드러나 있어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과 『동여비고』(1682)에 왕릉 또는 왕릉과 같은 큰 무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어 깊은 관심을 갖게 한다. 실제 선유도 망주봉 주변에는 빼어난 경관 못지않게 양질의 청자편들과 토기편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산포되어 있어 이 일대가 고려시대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군산군도는 우리나라 연안항로 뿐 아니라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오갈 때 반드시 지나야 했던 중요한 항로로, 송나라 사신 서긍이 한달동안 고려에 머물다간 이야기를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사신을 맞이하던 군산도의 모습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군산정, 관아, 숭산행궁, 오룡묘, 자복사 등이 자리하고 있고 이 일대에서 사신을 맞이했던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망주봉 주변에서 확인되는 수많은 유물과 흔적들을 보면, 고려시대의 사신 영접행사를 마주하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지난 주말 선유도 망주봉 주변을 다시한번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드러나 있는 기와편과 청자편들을 주워 모으며 이 곳은 왜 그럴까?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밭 일하시던 아주머니께서 ‘귀향터’라 불리던 곳이라 했다. 지금은 대부분 묵은 밭이 되어 수풀이 무성하지만 한창 밭을 갈아 농사짓던 때에 쇠스랑을 갖다 대기만 하면 청자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망주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고려시대 이야기들이 하나 둘 퍼즐처럼 맞춰지는 듯하다. 아직은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섬 고군산군도는 고스란히 그 자리에 역사를 담아 남아있는 유적과 함께 미래를 열어간다면,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으로 진정한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보물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수욕장을 사이에 두고 망주봉 맞은 편인 진말마을에는 조선시대 수군이 주둔하던 군산진터가 남아있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를 걷다보면 섬만이 간직할 수 있었던 소중한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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