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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 천명관

- 5분 걸림 -

 똑같은 이야기도 맛깔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는 언제나 주변을 설레게 한다. 또한 그런 사람의 이야기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어 우리는 저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여담이지만, 가끔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이 그저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야기’와 ‘거짓말’에 대한 내 오랜 집착을 되돌아보게 될 때 특히 그러하다. 아주 어려서부터 나는 언제나 뛰어난 이야기꾼이 되어 그럴듯한 거짓말로 모두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왔다. 실제로 내 사소한 거짓말에 주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갈 때면 알 수 없는 쾌감에 온몸이 저려올 정도였다. 사소한 거짓말을 반복하자면 이야기의 앞뒤를 제대로 끼워 맞출 줄 알아야 했고 엉성한 뼈대에나마 알차게 살을 붙여갈 줄 알아야했다.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야기 속 세상에서 마음껏 거짓말을 하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다 보면 번번이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입담 좋은 이야기꾼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 소개할 ‘나의 삼촌 부르스 리’의 저자 천명관이 바로 그런 이야기꾼이다. 그의 전작들(고래, 유쾌한 하녀 마리사, 고령화 가족)을 읽으면서도 앞서 말한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덕분에 그의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사람을 매혹하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신작 ‘나의 삼촌 부르스 리’를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라. 똑같은 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놓을 줄 아는 작가의 전혀 새로운 이야기라니! 일단 책을 잡으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노릇일 게다.

“산다는 것은 그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브루스 리, 이소룡의 말이다. 태생부터 상처투성이인 남자에게 전 세계를 사로잡은 동양의 스타 이소룡은 삶의 지표였다. 남자는 거대한 산과도 같았던 이소룡의 뒤를 이어 그와 같은 무도인의 삶을 살아가길 원했다. 실제로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을 법한 상황에서도 남자는 무도인의 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내하며 아슬아슬한 고비를 잘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는 끝내 이소룡처럼 살 수는 없었다. 그를 둘러싼 세상이 그를 순순히 내버려두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소룡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그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누구처럼, 혹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대신 자신의 삶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남자는 짝퉁 인생 일대기 내내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브루스 리가 될 순 없겠지만, 굳이 브루스 리로 살아갈 필요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들만의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각각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소룡을 흠모한 권도운이 그저 권도운으로 충분했듯 우리 모두도 우리들 각자의 이름으로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들의 인생 역시 그러한 사실을 증명해가는 하나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 작가 스스로가 밝혔듯 이야기는 에둘러가는 법 없이 시종일관 직접적인데, 그러한 서술 방식은 작가 천명관이 가진 특유의 입담과 어우려져 솔직담백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소룡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이소룡이 될 수 없었던 남자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 간에 얽히고설킨 인연의 실타래는 다소 긴 분량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곧 닥쳐올 추위를 대비해 마음 한 켠을 푸근하게 덥혀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러한 이유로 여러분께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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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