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췌하고 남루한 모습의 이주노동자가 당신 곁을 지나간다. 당신은 반사적으로 그를 피하게 된다. 이주노동자가 자신을 다 지나쳤다고 생각되는 순간 당신은 따가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본다. 이것이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우리가 다른 나라를 갔을 때에도 존재하는데, 약간 다른 게 있다면 천대를 하던 주체의 모습에서 천대를 받는 객체의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시선을 통해 피의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인 카림은 누가 봐도 칙칙하다. 칙칙하지 못해 다가오는 것조차 꺼려진다. 만약 어둠속에서 카림이 걸어온다면, 눈동자의 흰자밖에 보이지 않는 그를 경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카림을 어두운 밤이건 밝은 낮이건 상관하지 않고 경계한다. 한국말을 능숙하게 잘하고, 착한심성을 가진 카림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아니 보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검은 피부를 가진 동남아시아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주인공인 민서는 카림과 친하다. 항상 예민한 상태로 살아가는 민서가 이주노동자인 카림과 친해진 것은 바로 마음속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며 친해졌고, ‘반두비’로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반두비라는 뜻은 잠자리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친한 관계를 뜻하는데, 고등학생인 민서와 유부남인 카림이 이러한 관계라니 다소 의아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 온정의 시선을 주자는 의도와 더불어 한국인도 이주노동자와 그 정도로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언제나 닫힌 마음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대한다. 하지만 카림은 우리에게 말한다. ‘마음을 열어봐’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카림이 등장할 때마다 따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이 시선은 단순히 그 사람이 꺼려지는 정도의 시선이 아닌, 굉장히 경계하는 시선이다. 물론 요즘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의 범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인노동자들의 범죄율만큼 백인의 범죄 또한 만만치 않게 발생했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백인 외국어강사 하인즈와의 대화는 우호적이고 카림과의 대화는 비우호적이라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위치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본다. 큰 집에서 부유하게 잘사는 신만수가 보는 세상과 1년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해 파혼당한 카림이 보는 세상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카림의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자신의 피부색보다 더 어두운 미래만 존재하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정당하게 일을 하고도 신만수의 만행으로 인해 1년 동안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림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가 검은 피부를 가진 방글라데시아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사람들이 외국에서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온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참으로 분통이 터질 일이다. 같은 사람인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차별받는 동남아인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국에서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불평할 자격이 없다. 정신을 차려야할 사람은 만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이주노동자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봐줘야한다.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던 그들을 위해. 또 외국에 나가있는 우리민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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