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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

곽승연 선임기자
- 6분 걸림 -

34개의 OECD국 중 우리 한국의 자살률이 10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2012년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가 29.1명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OECD평균(12.1명)의 2.4배이며, 자살 사망자가 가장 적은 터키(1.7명)의 17배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이 큰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자살 원인 중에서 유명인이나 자신의 롤 모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베르테르 현상이다. 소식들을 세세하게 전달해주는 신문 기사들 또는 방송매체들 때문에 우리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굉장히 쉽게 접할 수 있다. 자극적인 요소들을 방송하기에 앞장서는 언론사들은 우리가 그다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스타들의 유가족, 자살방법을 소개해주며 그들의 장례식장 모습까지 들여다보게 한다. 실제로 故최진실씨의 자살 도구가 자세하게 보도된 이후 약 두 달여간 전국적으로 똑같은 도구가 불티나게 팔렸다. 이는 미디어의 자세한 보도가 자살 고위험군의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로 인한 자살 부추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자살’에 대한 언론보도를 자제하여 자살충동을 예방하고, 자살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해 모방자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 이 효과를 바로 파파게노 효과라고 한다.

 

파파게노 효과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마술피리에서는 새잡이꾼 파파게노가 등장하는데, 사랑하는 여인 파파게나가 사라지자 괴로운 나머지 목을 매려고 한다. 이때 세 요정들이 나타나 ‘목을 매는 대신 종을 울려보세요’라는 노래를 하는데 이 희망의 이야기에 파파게노는 목을 매는 대신 종을 울린다. 그러자 그의 앞에 다시 사랑하는 여인 파파게나가 나타나고 파파게노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파파게노는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즉, 베르테르는 죽음에 굴복했고, 파파게노는 슬픔을 딛고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파파게노 효과가 가장 잘 이용된 예를 들어보자. 바로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스트리아는 한 때 자살률이 높았으나 지금은 자살률이 사상 최저수준이다. 그 이유는 비엔나 지하철 사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지하철이 1970년도에 처음 생겼는데 80년대부터 갑자기 지하철 자살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대책을 논의했고, 그 당시 자살률이 높았던 도넛타워에서 사람이 ‘어떻게’ 뛰어내렸는지까지 상세히 보도한 미디어의 보도 방식에 주목했다.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상세한 보도가 나가면 자살률이 올라갔고 조금 지나면 약간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그다음 또 자살 사건이 발생하고 매체가 이것을 크게 다루면 다시 자살률이 높아졌다. 그래서 비엔나 자살예방센터에서는 ‘자살사건을 절대 보도하지 말자’는 목표를 세웠고, 자살보도권고안을 발표 및 이를 오스트리아 모든 주요 언론사에 설명했다. 오스트리아의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이 권고안을 받아들였고 그 이후 오스트리아의 자살률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단지 헤드라인에 ‘자살’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 걸까’ 사실 이건 하필 나에게만 오는 시련은 아니다. 많은 이가 공감 하듯이 누구에게나 오는 시련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이 이런 말을 했다.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불행은 없다. 가만히 견디고 참든지, 용기로 내쫓아 버리든지 이 둘 중의 한 가지 방법을 택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오는 시련이지만, 누구에게나 지속되는 시련은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릴 그 용기로, 파파게노처럼 다시 한번 제 2의 아름다운 삶을 개척해보자.

 

세상에 정말 죽고 싶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단지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사람들인데 우리가 너무 무관심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요정들이 파파게노에게 그랬던 것처럼 희망의 종소리,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황룡인이 되기로 노력해보자.

곽승연 수습기자

kwaksy@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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