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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스틸> : ‘리얼’한 인간적 성장과 함께 하는 ‘스틸’의 현란한 역동

김선주 선임기자
- 6분 걸림 -

2020년대, 영화는 새로운 스포츠경기를 소개하고자 가까운 미래를 선택하였다. 바로 로봇 박싱이 그것이다. 4각의 링이라는 철저히 폐쇄된 공간 속에서 육체간의 공격적 부딪침을 강요하는 박싱은 그 자체로서 보는 이의 긴장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요소를 포함한다. 『글래디에이터』류의 사극이 콜롯세움의 결투가 전하는 잔인성과 긴박감을 증폭된 형태로 재현하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략을 사용하는 반면, 『로키』류의 현대물은 링 위에 오르는 자의 링 밖 사정의 고단함과 박스 내의 격렬한 동작을 전하면서 감동과 볼거리를 동시에 취하는 접근을 택하였다. 이 스포츠의 미래를 소개하는 『리얼 스틸』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안전한 전략을 택한다. 4각의 살벌한 폐쇄공간에 강철덩어리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주고받는 액션의 스케일은 훨씬 커졌고, 그 과정 내 역동성도 무척 증폭되었다. 강철로 단단하게 뒤덥힌 거구의 몸체들이 강력한 펀치를 내지르는 사이, 사지와 머리 및 몸통은 과감하게 절단되어 나뒹군다. 그리하여 “싸움은 끝나지 않아, 어느 한쪽이 쓰러지기 전까진!”의 상황이 전혀 이례적이지 않다. 그렇게 진정한 강철을 찾는다는 이 경기의 이름은 ‘리얼 스틸’이다. 그러나 이 폭력과잉의 장면은 잔인하지도 혐오스럽지도 않다. 그것은 이 육체의 주인공들이 그저 강철로 된 기계장치일 뿐인 것에 기인한다. 그에 따라 『리얼 스틸』의 제작진은 이 강철들(스틸)의 이야기에 절실한(리얼) 요소를 불어넣어야 했다.
영화의 이 ‘리얼한’ 부분은 로봇을 조정하는 인간들의 사정에 맡겨진다.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실패한 권투선수로서, 지방의 로봇박싱을 전전하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남자, 엄마의 죽음으로 처음 만나게 되어 임시로 맡겨진 이 남자를 따라 로봇들의 경주에서 야심을 발하고자 하는 11살짜리 아들. 아빠는 비겁한 무뇌아였고, 아들은 비디오게임의 실제버전에 열광코자 하는 저돌적 플레이어였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주도적이고 독립성이 강한 아들은 고물로 주어온 약체 로봇 ‘아톰’에 음성인식 기술과 모션캡쳐 능력을 장착하여 경쟁력 있는 파이터로 거듭 낸다. 이들은 로봇을 춤추며 등장하게 하는 꼬마 프로모터와 로봇의 동작에 권투의 ABC를 입력시키는 조련사로서 환상의 콤비를 이루어 지방의 각종 경기에서 부각을 나타낸다.
이들의 이러한 행보는 세계로봇 챔피언인 하이테크 전투로봇 ‘제우스’와의 최종대결을 위해 예정된 수순을 밟아나가게 되고, 이 최후의 라운드는 그 어떤 권투영화의 클라이막스보다 더 현란한 볼거리와 밀도높은 박진감을 선보인다. 실제 헤비급 박싱챔피언쉽 쟁탈전을 모델로 구성된 거대한 경기장 내 군중과 장비의 스펙터클 외에도, 첨단장비로 무장한 골리앗로봇에 고물출신의 다윗로봇이 도전하는 대결구도로 인한 고전적인 긴장-감동 유발 장치는 유감없이 효과를 발휘한다. 여기에 금속성의 굉음을 일으키며 육중한 주먹을 박싱 규칙의 절도에 맞추어 휘두르는 선수들의 신체 역동은 ‘믿지 못할 투혼’을 운운하는 경기해설자의 절실한 멘트에 사실감마저 느끼게 한다. 더욱이 물리적인 약체 로봇 아톰이 드디어 음성인식기를 떼고 전직 권투선수인 주인공의 쉐도우박싱을 모션캡쳐하는 과정에 이르면, 관객은 어느새 이 ‘깡통들간 부딪침’ 속에서 인간육체의 충돌이 반영하는 진한 땀과 강인한 의지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리얼 스틸』은 분명 독특한 스포츠 영화이다. 로봇의 육체를 기반으로 스펙터클을 구사함에 있어, 『트랜스포머』류의 허황된 판타지를 버리고, 딱 필요한 만큼의 시각적인 과장만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여느 스포츠영화처럼 불우한 처지에서 용솟음치는 인간승리의 낭만을 소리 높여 구가하기보다는, 좌절에서 도약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경주 자체에의 응전의 가치를 설득해내고 있다. 『리얼 스틸』은 영리한 가족드라마의 특성도 내보이는데, 끈끈한 혈육지정을 은근하고도 쿨한 태도로 부각시키는 세련미를 발휘한다 (“사실은 너를 무척 ...”하는 애비의 미완성된 고백에 대해서는 “아빠의 비밀은 지켜줄께”가 아들의 응답이다). 결국 『리얼 스틸』은 기계장치를 이루는 ‘스틸’의 역동을 현시하면서도, 그를 다루는 인간들의 ‘리얼’한 감정의 밀도를 담아낸 매우 효과적인 문화상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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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