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판소리

군산대언론사 2
- 10분 걸림 -

저명한 국문학자 조동일은 연극과 영화 미학을 다룬 책 <<카타르시스, 라사, 신명풀이>>에서 누가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가리는 데 세 가지의 기준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말을 모국어로 삼고 있는가, 김치를 먹으면 맛이 있는가, 판소리를 들으면 즐거운가 등 세 가지를 들었다. 여기서 그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문학계를 대표하는 학자가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한국인의 자격의 하나로 들 정도로, 판소리의 문화적 중요성이 크다는 것만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11월 7일 판소리는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인류 구전ㆍ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언되었다. 판소리의 가치는 이제 국제적으로도 공인을 받은 것이다.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 거기서도 남녘의 시골에서 태어난 예술이 인류의 창조성을 대표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정작 우리 자신은 판소리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 판소리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기에 유네스코는 그것을 ‘창조적인 인간 천재의 걸작으로서의 뛰어난 가치’가 있으며, ‘살아 있는 문화적 전통의 기념비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했는가? 우선 판소리의 공연 방식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판소리는 창자(소리꾼) 한 사람과 고수 한 사람이 공연을 이끌어간다. 공연자가 단 두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장 경제적인 공연 양식이다. 이 두 사람의 공연자는 가장 간단한 인간관계를 표현한다고도 한다.
소리꾼은 전주에서 나는 합죽선(접는 부채)을 들고 서서 노래(창)와 말(아니리)을 섞어가며 판소리를 부른다. 그런가 하면 작품 속의 인물의 행동을 모방하는 동작(너름새)을 하기도 한다. 판소리는 ‘노래’와 ‘말’이 ‘창-아니리-창-아니리……’와 같은 방식으로 번갈아가며 반복 진행된다. 그래서 판소리는 ‘창과 아니리의 교체 반복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창 부분은 어떤 장면을 확대하고 자세히 묘사하여 정서적 긴장과 감흥을 유발시키는 구실을 하고, 아니리 부분은 시간의 흐름이나 장면의 전환 등 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구실을 한다. 또 해학적인 대목은 아니리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슬픈 대목은 창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고수는 소리꾼의 왼쪽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북을 치는데, 이 때의 북은 소리북 또는 고장북이라고 해서 농악에서 쓰는 북과는 다르다. 농악북보다 북통이 더 크고, 단단하며, 평평하다. 따라서 더 무겁다. 고수는 또 소리꾼이 판소리를 할 때 힘을 북돋워준다든가,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얼씨구!”, “좋다!” 등의 소리를 지르는데, 이를 ‘추임새’라고 한다. 추임새는 청중들도 하는데, 추임새는 판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리꾼은 추임새가 활발하게 나오는 공연 환경을 좋아한다.
판소리는 긴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양식인데, 판소리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 내부에서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어온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궁가>의 기본이 되는 ‘토끼와 자라 이야기’는 <<삼국사기>> ‘김춘추조’에 실려 있다. <심청가>의 기본이 되는 효행에 관한 이야기는 곳곳에 전해지고 있다. <춘향가>의 기본이 되는 열녀나 암행어사 이야기 또한 ‘옛날 이야기’ 형태로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라면 판소리의 줄거리는 작품을 읽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다. 판소리가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에 우리나라의 남쪽 지역에서 생겨났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판소리에 관한 기록은 1754년에 만든 <<만화집>>이라는 문집에 있는 <춘향가>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17세기 말이나 18세기 초에는 이미 판소리가 존재했을 것으로 믿는다. 판소리는 처음에는 서민들 사이에서 불려지다가 나중에는 양반들 사이에서도 불려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서민적인 내용이 양반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우리 민족 구성원 대다수가 즐기는 민족예술로 승화되었다.
판소리는 본래는 열두 종류가 있었다고 하지만, 19세기 말경에 인기가 없었던 일곱 바탕은 전승에서 탈락하고,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다섯 바탕만이 전승되고 있다. 여기서 탈락했다는 말은 창, 곧 음악이 탈락했다는 말이다. 창이 탈락한 일곱 바탕은 <변강쇠타령>, <옹고집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무숙이타령>, <장끼타령>, <가짜신선타령>이다.
판소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판소리는 구비전승되는 예술이다. 구비전승된다는 말은 기록이 없이 인간의 기억에 의해 전승된다는 말이다. 음악에서 기록은 악보로 하는 것이므로, 판소리에는 악보가 없다. 악보가 없기 때문에 판소리의 노래하는 법, 사설, 너름새 등은 전승되는 과정에서 변하기 쉽다. 같은 스승으로부터 배웠다고 할지라도 전승과정에서 차이가 생길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다양한 이본(異本)이 만들어진다.
둘째, 판소리는 문학, 음악, 연극의 요소를 갖춘 무형의 예술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리꾼은 노래, 말, 몸짓 등으로 판소리를 공연한다. 노래는 음악이며, 사설은 문학, 몸짓은 연극적인 요소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판소리는 종합적인 성격을 띤다. 뿐만 아니라, 노래, 말, 몸짓 등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공연 과정에서 소리꾼이 구전으로 배운 바를 나름대로 고칠 수도 있기 때문에 무형의 예술이라고 한다.
셋째, 판소리는 민간 광대 집단의 흥행 예술이다. 판소리는 순수한 민간의 예술로 근대 이전까지는 천민의 하나인 광대 집단을 중심으로 구비전승되어 왔다. 이들은 판소리를 좋아하는 청중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판소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청중들의 기대와 취향에 잘 부응하는 기량이 뛰어난 소리꾼을 ‘명창’이라고 하였다.
넷째, 판소리는 청중의 참여로 완성되는 예술이다. 판소리 청중은 다른 서양 공연예술의 청중과 달리 추임새를 통하여 공연에 참여한다. 판소리는 청중들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완성된다. 그러니까 추임새가 없는 판소리 공연은 완전한 공연이라고 할 수 없다. 판소리를 수준 높게 감상할 수 있는 청중을 귀명창이라고 한다.
다섯째, 판소리는 민중적이면서 전문적인 예술이다. 판소리는 천민인 광대가 불렀다. 내용은 평범한 인물들의 애환이며, 판소리를 즐긴 사람들 또한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판소리는 고도의 수련을 거친 명창에서 명창으로 구비전승되어 왔다. 판소리는 고도의 수련을 거친 전문가들만이 부르는 노래로서, 일반인들은 듣는 것에 만족해야만 한다. 그래서 판소리를 전문적인 예술이라고 한다.
이상의 다섯 가지 외에도 관점에 따라 판소리의 특징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양 음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판소리가 맑고 고운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고, 거칠고 쉰 목소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판소리 수련 과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가 바로 이 목소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 길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서구화의 과정에서 전승의 활력을 잃고 사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판소리를 유네스코에서 ‘인류 구전ㆍ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언한 것은 판소리가 훌륭한 예술적 창조물이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판소리가 사멸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가 인정한 훌륭한 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우리는 가장 훌륭한 민족 문화 유산을 저버린 세대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