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2017년 3월 1일, 올해로 삼일절이 98주년을 맞았다.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한 날이다. 또 3·1운동의 독립 정신을 계승해 민족의 단결을 굳게 하며,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로 4대 국경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3·1운동이 대다수의 국민들이 태어나기 전이라 아주 오래된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삼일절 당일에도 국기를 게양하는 가구를 찾아보기 쉽지 않으며, 그저 단순히 하나의 쉬는 날로 인식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래서 이번 506호에서는 삼일절을 맞아 우리나라의 역사와 민족의 얼을 느낄 수 있는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의 생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민족의 뜨거운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 독립기념관
▲ 겨레의 탑 / 촬영 : 이혜원 기자 |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모아 전시하며 연구하는 종합적 기념관이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상징하는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제대로 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다 1982년 일본이 역사교과서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하는 망동에 전 국민은 분노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 성금 모금과 역사자료 기증 운동이 일어나 독립기념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 결과 1987년 8월 15일 역사적인 독립기념관 개관이 이루어진다.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위치하게 된 이유로는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유관순 열사, 이동녕 선생, 이범석 장군 등의 많은 독립운동가의 대표적인 운동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먼저 독립기념관을 가는 법은 기차나 전철 1호선을 통해 천안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이동하거나,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통해 천안 종합 터미널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 수 있다. 독립기념관을 경유하는 시내버스로는 천안 → 진천 간 시외버스 381번, 382번, 400번 등 모두 6개의 버스가 자주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하절기 기준(3월~10월) 오전 9시 반에서 오후 6시까지, 동절기 기준(11월~2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독립기념관의 상징인 겨레의 집 / 촬영 : 이혜원 기자 |
독립기념관에 들어가게 되면 겨레의 탑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막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의 날개 같기도 하고, 기도하는 양손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겨레의 탑은 51m의 대형조형물로 민족의 자주자립을 향한 의지와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겨레의 탑을 지나 815개의 태극기가 있는 독립기념관의 중심부로 이동하게 되면 중심 기념 홀의 역할을 하는 건물인 겨레의 집을 만나볼 수 있다. 겨레의 집은 길이 126m, 폭 68m의 축구장만한 넓이와 건물 15층 높이(45m)에 이르는 기와집이다. 고려시대 건축물인 수덕사 대웅전을 본 떠 설계한 모습으로 독립기념관의 상징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독립기념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중이므로 건물 외관만 감상할 수 있고 내부는 들어갈 수 없다. 리모델링 공사는 8월 30일(수)까지 진행될 예정이니 참고하기를 바란다.
▲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모형 / 촬영 : 이혜원 기자 |
겨레의 집을 통과하게 되면 선사시대부터 1945년 광복 즈음까지 우리겨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7개의 전시관이 보인다. 겨레의 집을 기준으로 왼쪽 편으로 돌아 제1관 겨레의 뿌리관부터 감상을 하게 된다. 겨레의 뿌리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우리 겨레가 일군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터전을 지키기 위해 펼쳤던 오랜 노력에 대해 관람할 수 있는 관이다. 1관의 처음은 5000년 동안 우리 겨레의 삶의 터전이 된 한반도의 오래된 역사 구석기, 신석기 시대, 우리 겨레의 첫 나라 고조선의 생활 도구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그 뒤로 고조선의 멸망이후의 고대국가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건국 설화들과 고구려, 고려, 조선의 대외항쟁의 이야기가 재밌고 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모형들과 영상물로 제작되어 있다.
▲ 일본군 위안부 성병검사대 / 촬영 : 이혜원 기자 |
2관 겨레의 시련관은 1860년대부터 1940년대, 즉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간을 보여준다. 강화도조약, 조이수호통상조약 등 외세의 불합리한 침략들과 변화의 물결이 들이닥쳤던 개항기와 개혁기를 지나, 우리민족의 긴 역사가 일제의 침략으로 단절되었던 시련의 일제강점기의 잔인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짓밟힌 위안부의 인권에 대해서도 전시되어 있다. 위안소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고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과 증언을 자세하게 전달해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아픔이 느껴진다. 또한 범죄를 은폐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과 현재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는 역사왜곡을 알려준다. 이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역사 왜곡에 맞서 올바른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 안중근 의사 자서전 / 촬영 : 이혜원 기자 |
2관과 3관 이어져 있어 2관을 관람한 뒤 바로 3관을 관람할 수 있다. 제3관 나라지키기관에서는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으로 대표되는 한말의 국권회복운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민중들이 벌였던 의병 전쟁을 전기와 중기, 후기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의병들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장기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국경을 건너게 되고,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옮겨간 이들은 독립군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 독립을 위해 바친 안중근 의사의 일생과 그의 유품들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4관 겨레의 함성관은 민족 최대의 항일 독립운동인 3·1운동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3·1운동의 전개과정과 각계각층의 다양한 자료를 관람할 수 있다. 그러나 4관 겨레의 함성관은 아쉽게도 전시내용과 시설을 새롭게 연출, 보완하기 위해 8월 14일(월)까지 임시폐관 중에 있다. 8월 15일(화)에 재개관될 예정이라고 한다.
▲ 독립군의 피 묻은 태극기 / 촬영 : 이혜원 기자 |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제5관 나라되찾기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각자 총과 칼을 든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독립군상을 볼 수 있다. 5관은 광복을 이루기까지 펼쳐온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항일 무장투쟁과 3·1운동이후 일제를 향해 독립전쟁을 선포한 역사가 담겨져 있다. 한국광복군 창설과 의열투쟁에 대한 모형물이 실감나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많은 항일무장투쟁들의 일어났던 곳의 현재 모습과 벽면에 새겨진 당시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의열사들의 명언들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 무명 독립군상 / 촬영 : 이혜원 기자 |
제 6관 새나라세우기관은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민중의 항일운동, 그리고 독립운동의 중추기관이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들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의 첫 공간에는 고등학생 시절에 배운 적이 있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등 시인들의 대표적인 민족저항시 다섯 편이 새겨져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의지를 느낄 수 있다. 또 임시정부요인 밀랍인형과 임시정부의 주요 활동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전시되어 있다.
▲ 임시정부요인 밀랍인형 / 촬영 : 이혜원 기자 |
마지막 7관은 일제강점기에 다양하게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을 주제로 구성된 체험전시관으로,독립운동사에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나라사랑 정신과 조국광복의 기쁨을 느껴볼 수 있다. 단,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으로 체험할 수 없으니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독립기념관의 6개의 전시관의 나가는 곳에는 각 전시관별 도장이 준비되어 있는데 전시관 관람 후 6개의 도장을 모두 모아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올리면 소정의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또한 독립기념관을 관람하다 보면 군인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독립기념관과 대한민국 육군 상호협력 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관련 육군 병사 휴가 중 독립기념관을 방문 관람하면 추후 휴가 시 1일 휴가를 보상하는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휴가를 나온 군인들은 휴가증을 꼭 지참해 독립기념관에 방문하면 애국심도 느끼고 휴가보상도 받는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유관순 열사 생가
▲ 유관순 열사 생가 / 촬영 : 이혜원 기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 위치하고 있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는 1902년 12월 16일 유관순 열사가 태어난 곳이다. 열사는 이화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3·1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1919년 4월 1일 3천여 군중이 참여한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생가는 아우내 만세운동 당시 일본관헌들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유품 한 점 없이 전소되고 빈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91년 12월 30일 복원하였다.
▲ 매봉교회 외관 / 촬영 : 이혜원 기자 |
유관순 열사의 생가는 ‘ㄱ자’ 형태의 모습으로 열사의 거사를 알리고자 봉화하였다는 봉화지와 함께 1972년 10월 14일 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고 생가와 기념비만 자리 잡고 있어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 지하에 있는 유관순열사 전시실도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둡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는 모습이다.
▲ 매봉교회 지하실에 위치한 유관순열사 전시실 내부 / 촬영 : 이혜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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