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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한국문학과 전북문학의 힘

- 11분 걸림 -

1.
최근 세계 전역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저 멀게는 1892년 홍종우에 의해 「춘향전」이 프랑스에 번역되어 그곳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고, 가깝게는 1970년대 소설가 윤흥길이 일본에서 세계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각광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한국문학이 세계인들에게 받는 관심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다. 그만큼 지금 세계전역에 불고 있는 한국문학의 바람은 거세고 폭발적이다. 연일 상한가다. 최근 판소리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재로 공인되었고, 한국 최고의 시인인 고은의 시가 세계 30여개국에 번역되어 널리 읽히더니 현재는 매년 노벨문학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으며, 그러더니 이번에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과 유럽 전역에 소개되어 그곳 독자들의 눈길을 한 눈에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세계문학 속에 일고 있는 이 한국문학의 거센 바람 속에는 전북 사람들이 좀 더 자랑스러워 할 만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현재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한국작가들 중 상당수가 전북지역 출신 작가라는 점이다. 판소리가 그러하고, 윤흥길이 그러하며, 고은이 그러하다. 그런가 하면 또 신경숙이 그러하다. 여기에 하나둘 외국어로 번역되며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채만식, 서정인, 박범신, 은희경 등을 더하면, 세계문학 속에 전북문학의 기세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이토록 좁은 지역에서 이렇게 수많은 작가가 세계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2.
이처럼 전북문학은 한국문학의 한 부류를 차지하지만 한국문학을 대표하며, 더 나아가 세계문학의 또 다른 목소리로 각광받고 있다. 이는 전북문학에 전북이라는 지역적 특이성이 깊숙하게 꿈틀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전북문학은 한국문학 일반의 특질을 나누어 가지면서도 전북만의 지역적 특성을 하나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 그러니까 전북 지역의 특성이 살아 꿈틀거리는 소재나 모티프들이 전북문학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으로 비약시킨 원동력이 된다.
전북문학의 특성을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문학의 특성을 묶을 키워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추상도를 높이면, 있다. 그중 우선 눈에 띠는 것은 ‘여성성’(혹은 ‘모성성’)과 ‘저항성’이다. 전북문학에는 아주 오래 전, 구체적으로는 백제시대부터 많은 여성작가들이 등장한다.  「정읍사」, 「선운산」, 「지리산」, 「방등산」 등은 남성적 질서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면서도 보다 높은 정신적 위치를 차지했던 여성들이 부른 백제의 노래들이며, 이는 승려와 화랑이 대부분인 신라의 향가 작가와 비교해 보면 단연 이채롭다. 여기에 조선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부안의 기생 매창의 시를 덧붙이면, 전북문학의 이질성은 단연 ‘여성성’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북문학의 또 하나의 고유성은 ‘여성성’과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한 ‘저항성’이다. 전북문학에 저항적인 전통이 깃든 것은 아마도 한국의 역사가 줄곧 남성중심적이고, 상층부 지향적이며, 또한 중앙집권적인 질서에 의해 지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사회원리로부터 소외받으면서도 중앙의 질서보다 훨씬 인간적인 이타적 질서를 꿈꾸고 있었으니, 저항적일 수밖에. 특히 판소리계 소설은 이 전북만의 풍자와 비판 정신 외에 모든 것을 감싸안는 모성적 이타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경우이며, 동시에 전북문학의 정신을 가장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 경우에 해당한다.

3.
전북문학의 특이성과 고유성이 단연코 빛을 발하는 것은 근대 이후부터이다. 근대 이후 전북문학은 한편으로는 한국현대문학의 요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현대문학의 시금석이자 반성적 거울로 작용한다. 근대 이후 한국작가들이 주로 서양의 문학을 일방적으로 동경하고 그것을 이식하거나 또는 그것에 동화되고자 할 때 전북의 작가들은 다른 길을 걷는다. 한국근대문학 일반이 걸었던 서양문학의 ‘이식문학사’에 가깝다면, 전북의 소설은 그 ‘이식문학사’에 거의 유일하게 저항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전북은 문화적 전통을 내면화하면서 동시에 그 전통을 규정적으로 부정하는 의지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월등 높은 곳이었고,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이 서구적 근대를 일방적으로 모방했던 한국문학의 주류와는 달리 그 근대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전북문학 특유의 성격을 잉태시킨 덕분이다.
이처럼 근대 이후 전북문학은 서구문학을 일방적으로 모방하던 한국문학 일반과 달리 근대적이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문학, 근대를 지향하면서도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근대를 넘어서는 문학을 끊임없이 발명해낸다. 우선 전북문학은 일본 제국, 군부독재 등 사회구성원들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에 비타협적으로 저항하며, 더 나아가 그들이 일방적으로 이식하고자 하는 타자와의 공존을 거부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가장 강력한 반기를 든다. 이병기, 신석정, 정양, 고은, 김용택, 안도현 등의 시가 그러했으며, 또한 채만식, 이근영, 최일남, 서정인, 윤흥길, 박범신, 이병천, 양귀자, 최명희, 은희경 등의 소설이 그러했다.
그렇다고 전북문학이 한국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정치체제와 경제원리에 대해 비판만을 행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전북문학의 힘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근대, 그러니까 자본주의 질서를 넘어설 수 있는 탈근대적 가치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전북 출신의 작가들은 무슨 운명처럼 내내 전북문학을 통해 계승되어온 ‘모성의 힘’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자본주의적 질서를 넘어설 수 있는 힘으로 제시한다. 전북작가들은 비유하자면 모두 ‘질마재의 아들/딸’들이고 ‘선제리 아낙네들의 후예’며, 저 멀리는 자신을 사지로 내몬 남성들을 매번 용서하고 감싸안는 ‘심청들’의 현대적 계승자이다. 이러한 모성의 언어를 현대적으로 계승했기에 판소리, 채만식의 소설, 서정주의 시, 윤흥길의 소설, 고은의 시와 소설, 신경숙의 소설은 한국의 다른 지역 출신의 작가들과는 물론 세계문학 속의 어떤 작가와도 구별되는 독자의 개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북출신의 작가들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이전부터 고유하면서도 높은 문화적 수준을 유지해왔던 전북문화의 힘이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

4.
얼마 전 노벨상의 국가 스웨덴의 한 언론매체가 시인 고은을 일컬어 ‘군산의 제왕(Kungen av Kunsan)’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아마도 「만인보」 등을 통하여 군산이라는 지역을 세계문명사적인 맥락에서 탁발하게 형상화시켰다는 뜻일 게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고은은 군산이 있어 ‘군산의 제왕’이 되었고 동시에 고은의 고향 군산은 고은으로 하여 ‘제왕을 낳은 도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전북은 ‘군산의 제왕’을 낳는 한편 ‘섬진강의 제왕’, ‘정읍의 제왕’, ‘고창의 제왕’, ‘남원의 제왕’, ‘익산의 제왕’ 등을 잇달아 낳고 있다. 그리고 그 ‘제왕’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고향인 전북을 인류 전체를 구원한 새로운 가치가 발명되는 세계적인 명품 지역으로 발돋움시키고 있다. 경이로운 일이다.
그렇다고 마냥 이 경이로움에 취해 있어서만은 안된다. 일찍이 휠덜린은 ‘위기가 자라는 곳에 구원의 힘도 자란다’고 한 적이 있거니와, 이는 곧 ‘구원의 힘이 자라는 곳에 위기도 자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터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에게는 전북 문학에 대한 자긍심 외에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있는 셈이다. 전북문학의 자긍심을 지속시키고자 한다면 전북문학에 대한 보다 전폭적인 관심이 다시 필요하다는 것. 다시말해 이들 전북 각 지역의 제왕들이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계승해 각 지역을 전세계적인 지역을 만들었듯이, 우리 역시 이들이 일군 문학적 업적을 계승해 더 높은 문화적 경지를 창출해가는 것이 요구된다는 것. 전북 문학의 미래가 곧 한국문학의 미래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한국문학의 운명이 걸린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각주)-----------------
 이 글은 편집자의 요청에 따라 필자가 여러분들과 같이 집필한 「전북의 재발견-문학」(전라북도 발행, 2011)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이다. 만약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전북문학의 의미와 가치에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앞의 책을 읽어보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혹시나 정말로 그런 사람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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