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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과 세월호

김수관 교수
- 4분 걸림 -

얼마 전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낯선 목소리는 주차 중 내 차 범퍼를 살짝 부딪혔다고 했다. 그 순간 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차지만 나에게 더 없이 충실하기만 한 애마에 생채기가 난거 같아 속이 상했고 또 한편으로는 요즘 세상에 이런 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내 뇌리를 스쳤다.

얼마가 지났을까? 도착해서 내차를 확인하고는 마음이 서글펐다. 앞 범퍼에는 흰색페인트자국이 그어져 있었고 모서리 페인트는 일자로 파여져 있었다. 가해자에게 수리를 받아야겠다고 전화를 하니 근처에서 차로 달려오셨다.

아뿔싸! 세분의 중년 아줌마들이다. 그것도 한 사람은 미군부대에 계시는 파란 눈의 숙녀분, 한분은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에서 오신 한인교민이고 마지막 한 분이 다행히 한국분이셨다. 여러 가지로 복잡한 사연을 듣고 나니 결과는 하나였다. 내 차가 망가진 것과 그분들 또한 참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한적한 골목에서 일어난 사소한 접촉사고. 분명 피해자는 필자이고 가해자는 그 세분이다. 근데 그들을 만나 다 잊어먹은 영어로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 파란 눈의 숙녀도 교민분도 한국인 친구분도 우리가 기대조차 하지 못할 만큼 순수함이 사라져버린 지금의 사회에서 오히려 날 미안하게 만들었다. 다음 주에 견적 받아서 알려주면 수리비를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그분들은 그렇게 내가 군산으로 돌아온 터미널에서 친한 친구 두 사람을 미국인이 떠나보내고 남은 한사람은 미군부대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한 시간 가령 어두컴컴한 지하차고에서 애마의 멍든 눈두덩을 계란으로 어루만지듯 콤파운드로 닦아내니 이마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페인트 자국이 사라져간 그 빈 공간에 내 맘은 가해자(??)들의 친절함과 진실함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 머릿속에 세월호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자기만 위해서 팬티만 입고 도망갔던 사람. 어쩌면 죽어가는 사람을 못 본채 옆으로 지나쳤던 그 제사장과 같은 유대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양자 모두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난 영어로 의사가 소통되는 그 파란 눈의 이방인,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수월했던 그 교민과 평범한 아줌마 한분한데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보았다.

세월호에도 선한 사마리아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공존했다. 그러나 그 당시 세월호의 조타실에 선한 사마리아인 두 사람 아니 한 사람만 더 있었더라면 저렇게 많은 희생을 치렀을까 하고 신에게 묻는다. 분명 우리 주변에는 선한 사마리아인들도 많다. 하지만 곳곳에 선한 모습의 악한 사마리아인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자신도 종국에는 그 고통보다 더한 고통에 동참한다.

주말 동안 그 어떤 때보다 내 몸과 맘은 가벼웠다. 잠시나마 세월호의 아픈 무게감을 잊게 한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앞으로 세월호의 상처를 우리 스스로 벗어버리는 길은 내 자신이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변하고 우리 모두가 변화하면 앞으로 세월호의 기억은 세월 속에 고이고이 묻을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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