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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의 바다 한가운데 표류된 우리들

배소연 기자
- 4분 걸림 -

예전에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수많은 말들은 마치 풍문처럼 귀에 들려왔고, 가끔은 재미를 느끼며 몰래 이야기를 듣곤 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내용이거나 혹은 당시 핫한 이슈들이었고, 필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공감을 형성하고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 당시의 오가는 단어들은 지금처럼 날이 서있거나 새롭게 만들어져 낯설고 이질적인 말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작 몇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의 색채는 상당히 많이 변해 있다. 1, 2년 사이에 젊은 나조차도 못 알아듣는 말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미디어 매체에서, 온라인에서 수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요즘은 정류장에 앉아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로 같은 나라에 사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어떤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럼과 동시에 이전에 느꼈던 소소한 공감대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부모형제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조차 말 한마디에 그 말이 무엇인지 이해 해야하는 상황이 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기존에도 이런 상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언어의 차이는 보통 세대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언어의 차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언어적 차이는 급작스럽게 늘어난 신조어들로 인한 것들이며 기존의 세대 간에 문화적 차이가 일어나면서 발생하게 된 언어적 차이와는 다른 성향을 띈다. 세대 간의 언어적 고립이 이젠 개인 간의 언어적 고립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러 대중매체에서는 연일 새로운 말들이 탄생하고, 이 신조어를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게 된다. 그러는 도중에 이 신조어를 받아들이지 못한 다른 개인은 신조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공감대에서 소외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언어의 발달과 소멸에 있어 자연적인 현상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조어의 폭증과 짧은 수명으로 인해 이러한 언어의 고립이 점점 확대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문제 말고도 기형적 변화를 가져오면서 언어예절 문제와 질의 저하 등 합병증을 유발하고 있다. 대학교의 논술 강의를 두고 교수들이 현재 학생들의 언어 수준이 이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 말할 정도니, 이제는 그냥 내버려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 버카충 해야 돼.“와 ”나 머리 이번에 자갈로 염색 했어“는 신조어를 사용한 말이다. 더군다나 나온 지 1년이나 된 말이라는데 정작 필자는 이 신조어에 대해 알고 있지도 못했다. 이외에도 왜 탄생한지도 모를 신조어들을 말하며 대화하는 후배들을 보며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신조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점점 다양해지고 변화되는 시대에 맞춰 탄생하는 언어의 속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모름지기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언어의 탄생 또한 그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화된 신조어 속에서 이를 계속 따라가며 힘들어하는 것도 우리며, 그 속에 고립되는 것도 우리다. 그렇기에 신조어의 탄생과 사용에 대해 좀 더 신중히 생각하면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배소연 기자

100062@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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