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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영화의 드라마는 단순하다. 행복한 일상을 지내던 사람들이 사고로 인해 이별하거나 갖은 고초 끝에 어려움을 빠져나오거나. 대개 이 두 가지 스토리 안에서 기승전결은 마무리된다. 재난이란, 우리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희로애락을 단숨에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아무나 겪을 수 없는, 아니 엄밀히 말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순간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깊은 몰입을 유도할 수도 있다. 게다가, 영화이니. 시각적 간접 체험이 주는 힘 역시 만만치 않다.

김지훈 감독의 「타워」는 그런 점에서 재난 영화의 공식을 잘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에서 파티가 열린다. 서울 최고의 집값을 자랑하는 이 곳엔 1000여 가구 이상이 살고 있다. 주민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를 하는 중년 여성,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 매니저, 건물 관리 및 보안 팀장 등 이 곳을 일터로 삼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거대한 배나 호텔처럼 이 곳도 역시 삶의 축소판이다. 부유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으며 이제 막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고 소중한 아이를 지켜야 하는 부모도 있다.

   
 
영화가 선택한 재난은 인재다. 초고층 빌딩의 이미지를 높여 좀 더 비싼 가치를 얻고 싶은 대표는 무리한 선택들을 강행한다. 호화로운 스노우쇼를 위해 헬기를 띄워야 한다며 이상 기류에도 불구하고 고집한다. 불가능을 무능이라 생각하는 그는 권력을 이용해 순리를 어긴다. 설상가상으로 건물의 스프링클러도 문제다. 하지만 역시 저녁의 파티가 먼저라며 보이지 않는 사고의 위험은 덮어둔다.

약간의 무관심과 눈속임이 연쇄되어 결국 헬기가 건물에 충돌하고 이제는 탈출이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 지점까지 영화가 꽤나 빠른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 온다는 사실이다.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가 사고 지점까지 절반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제작자로 나선 윤제균은 이번엔 정반대의 전략을 선택한다. 설경구와 하지원, 김인권의 코믹 연기가 「해운대」의 재난 이전까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드라마였던 데 비해 「타워」에는 각 개인의 드라마나 사연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령, 소방대장인 설경구가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화재현장에 출동하는 장면만 해도 그렇다.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좀 늦는다”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소방 공무원의 피곤한 삶이나 고단한 일상 등은 단순하게 처리 되고 관객의 짐작에 일찌감치 양보된다. 싱글 대디인 김상경과 매니저 손예진의 러브 라인도 마찬가지다. 「해운대」에서 이민기와 강예원의 사랑이 코믹과 멜로를 넘나들었던 것과는 구별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타워」는 「해운대」보다는 「7광구」와 비교되어야 더 적합한 작품이다. 윤제균 제작, 김지훈 감독이라는 공통점도 그렇지만 CG에 의존한 장면이 많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해운대」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단맛을 보여주었다면 「7광구」는 쓴맛을 그것도 독하게 쓴맛을 보여준 작품이다. 「타워」는 그런 점에서 분명 「7광구」의 한계를 벗어난 작품임에 분명하다. 설경구와 손예진의 연기도 안정적이며 공들여 찍은 화재 장면 역시 생생하다.

재난 영화를 새롭게 찍기는 쉽지 않다. 「더 그레이」나 「파이 이야기」와 비교해 본다면 이 부분은 더욱 분명해 질 듯 싶다. 두 작품은 재난 영화이면서 한편으로 재난 영화의 공식을 전복한 작품이니 말이다. 결국, 재난 영화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을 늘 곁에 두고 살아간다. 작게든, 크게든 재난을 겪으며 성장하고 살아간다.

물과 불을 다루며 한국의 스필버그를 꿈꾸는 윤제균과 김지훈 감독은 「타워」를 통해 한국형 상업 영화의 가능성을 검증받게 될 것이다. 상업 영화의 성패는 결국 관객수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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