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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유일한 일본 사찰 東國寺

김선주 선임기자
- 5분 걸림 -

우리의 기억 속에 사찰은 마치 변치않던 교과서 내용처럼 흙과 오래된 가로수를 따라 걷다보면 깊은 산 속에 빛바랜 단청이 휘어진 나무기둥과 어우러진 반듯하지 않지만 정갈한 우리의 절을 떠올리게 군산의 구불길을 따라 가다 만나는 상주사와 불주사가 그렇다.
이러한 우리의 사찰과는 참 많이 달라 호기심을 갖게하는 사찰이 있어 군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여행의 재미를 주고 있다. 군산 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동국사’가 그렇다.
동국사는 행정구역상 군산시 금광동으로, 평지 위에 바둑판처럼 조성된 ‘군산정’이라 불리던 일본인 주거지의 남쪽 약간 도드라진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4층 높이의 건물들에 가려 길을 찾기 쉽지 않지만, 나지막한 건물이 질서정연했던 일제강점기 당시 동국사는 넓고 낮은 평지에서 훨씬 잘 보였으리라 생각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지어진 일본 사찰 중 지금도 여전히 사찰로 운영되고 있는 유일한 곳이 동국사다. 낯선 일본 사찰과 우리나라의 사찰과 비교해 보는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국사는 1913년 일본인 승려 우치다(內田)에 의해 ‘금강사(金剛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이런 이유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동국사는 한국의 전통적인 사찰과는 다른 양식을 띤다. 1945년 해방 이후 김남곡스님이 ‘동국사’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동국사 경내는 전후보다 좌우로 넓고 편평하게 마련되었고 마당 전체에 쇄석을 깔아 흙을 밟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 전통 사찰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경내에 들어서자 마자 익숙하지 않은 규모에 비해 매우 크다는 인상을 주는 대웅전은 일본의 에도시대(1603~1867) 건축양식을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웅장한 대웅전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 지붕을 하고 있는데, 특히 급경사를 유지한 지붕선과 직선의 용마루, 처마에 장식이 전혀 없는 점이 이채롭다. 또한 벽면을 가득 채운 창문은 높은 습기에 대처하기 위한 섬나라의 건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하나 우리 전통 사찰은 보통 대웅전과 요사채를 멀리 떨어져 있고 비교적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비해, 대웅전과 요사채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종교의식 공간과 생활공간이 같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웅전에 지어진 재료까지도 모두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하니 전체적인 모습이 일본 사찰을 있는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동국사 대웅전은 2003년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올해 9월 5일 군산에서 세 번째 보물지정이 이루어졌는데 동국사 대웅전에 모셔진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373점이다. 보물 제1718호로 지정되었다. 이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 있던 것을 해방 후 동국사 대웅전으로 옮겼다고 한다. 불상은 나무로 틀을 짜고 진흙을 입혀 만들었는데, 불상 내부에서 나온 복장유물(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넣는 갖가지 유물들)을 통해 1650년에 응매스님에 의해 제작되었음이 분명한 중요 문화재다.
동국사 경내에 들어와 있으면 일본 사찰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일본스럽다. 그 대웅전 안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우리의 보물이 있다.
 

 

 

 

보물 1718호 동국사 불상은 정확한 조성시기(1650년), 분명한 조성 주체, 불상 조성에 소요된 시주 물목(物目)과 수많은 시주자 등이 조성 발원문에 낱낱이 기록으로 남아 복장 의식이나 사원 경제사, 그리고 조선후기 불상연구에 기준이 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불상은 조각승 응매(應梅)의 현존 유일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373복장유물(腹藏遺物)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넣는 불경 등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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