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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군산을 영화의 배경이나 소재로 촬영된 영화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지금까지 개봉된 한국영화 중에서 군산 지역이 영화의 배경이 되거나 소재가 된 것은 100편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올해만 해도 강우석 감독의 <전설의 주먹>, 윤종찬 감독의 <나의 파파로티>, 육상효 감독의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정기훈 감독의 <반창꼬>,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거미의 땅> 등등의 신작 영화들이 군산 지역을 무대 혹은 배경으로 촬영되었거나 촬영 중에 있다.
이처럼 군산이 등장하는 영화의 종류는 상당히 다양하지만 단순한 촬영지나 로케이션 장소로 ‘군산’을 활용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 와서는 이러한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군산의 지역적 특성과 관계없이 영화의 단순 배경으로 이용되는 사례는 별도의 고찰 과정이 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군산 지역을 중점적으로 다룬 세 편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꽃파는 할머니>, <핑크>를 대상으로 영화에 나타난 군산의 이미지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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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한번 없고 포옹 한번 없이도 근사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담아낸 이 영화는 1998년 개봉되어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에는 하나의 상징적인 공간이 등장한다. 사진관의 무대와 그 일대의 거리 풍경이 그것이다. 영화 속 주요 배경은 1980년대 서울의 변두리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주 촬영지는 군산의 신창동의 오픈 세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초원 사진관 역시 신창동 주택가의 한 차고를 허물고 개조한 세트로 재탄생되었다. 그 결과로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타난 군산은 항구의 모습이 아닌 80년대 서울의 변두리 혹은 주변부의 원도심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상징되고 있다. 이 영화는 남녀 주인공의 아름다운 만남과 이별 그리고 죽음이라는 코드로 현실을 일방적으로 과장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축소시키고 감춰버린다. 이로 인해 군산이라는 도시 전체가 두 남녀의 우정을 추억하는 곳으로 그려져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그려진 군산이 애잔하면서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래서이다. 여기에서 실제로 군산이 그런 도시인가 아닌가, 항구 도시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과 관계없이 영화의 서사가 요구하는 공간 이미지로 군산이 그렇게 형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꽃파는 할머니>(1999, 박상미, 김성진 감독)는 군산의 한 기지촌, 일명 문화마을(타운)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이어가고 있는 할머니들의 일상과 기억을 담고 있는 독립 다큐이다. 이 영화에 그려진 기지촌에 유일한 한국여성들은 60세를 넘긴 할머니들뿐이다. 필리핀이나 러시아에서 들어온 인터걸들이 영업 중인 이곳에 할머니들은 ‘기름값’이라도 벌어보려고 밤마다 클럽을 돌며 꽃을 팔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한 여성들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그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기지촌 여성이 된 것처럼, 할머니들 역시 먹고살기 위해 기지촌을 따라 흘러 다닌 것이 언 40여 년이 되었다.
군부대가 있는 곳에는 여성이 있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인들에게 미군은 구세주였다. 그 때 미군부대 주변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 달러를 벌어들여 가족을 먹여 살리던 여성들...이제 세월이 흘러 한국은 발전하게 되었고, 그 여성들은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타운을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들. 군산을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여러 모로 상징적이다. 이 영화는 기지촌 할머니들이 경제적, 성적 착취와 함께 사회적 멸시와 냉대 때문에 그렇게도 지긋지긋한 미군 기지를 떠나지 못하고 시든 화초처럼 생을 마감하는 현실을 군산 지역의 종속적이고 주변적인 이미지와 관련시켜 보여주려고 한다. 어느 측면에서 이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 훨씬 더 군산의 모습, 군산이라는 도시적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체제와 지역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놓고 ‘기지촌’과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타자화한 공간과 삶이, 이제 체제와 지역의 논리에 의해 파괴되거나 말소되어 가는 공간이 바로 군산의 이미지라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핑크>(2011, 전수일 감독)는 낡은 항구의 한 선술집 ‘핑크’를 배경으로 한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낡은 항구의 선술집 ‘핑크’의 여주인인 옥련(서갑숙 분)은 자폐아인 아들 상국(박현우 분)을 데리고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으로 젊은 여자 수진(이승연 분)이 나타난다. 수진은 옥련을 도와 술집을 함께 꾸려나간다. 한편 옥련은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를 지키기 위해 철거 반대 농성에 앞장섰다 급기야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수진은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상국을 돌보며 과거 근친 성폭행의 상처를 벗겨내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자 괴로워한다. 결국 수진은 병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부친의 호흡기를 벗겨 내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상처를 도려낸다. 얼마 후, 상국은 갯벌에 버려진 냉장고 안에 들어갔다 밀물에 갇혀 죽고, 수진은 ‘핑크’의 문을 다시 연다.’는 것이 줄거리의 내용이다.
이 영화는 군산의 오래된 내항 주변의 갯벌과 바다, 해망동의 폐가 그리고 선술집 ‘핑크’는 내항 주변의 한 노조사무실을 개조하여 촬영된 작품이다. 영화에서 ‘핑크’ 주변을 서성거리는 인물들로는 주인 옥련과 정신지체를 앓는 중학생 아들 상국, 영업을 돌봐주는 명분으로 옥련과 연인 같은 관계를 유지 중인 경수, 노래하는 방랑객 등이 있다.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 재개발은 절망으로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핑크>는 군산의 주변적 이미지를 ‘잘나가는’ 신도심과 ‘퇴락한’ 갯벌 해안 지역의 대비를 통해 형상화한다. 해안 지역의 쇠락한 이미지는 이미 철거가 예정된 폐가와 경계선상에 살아가는 옥련과 수진 등의 인물을 통해서도 쉽게 연상될 수 있다. 이들이 살아가는 해망동 빈민촌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곤궁한 삶들이 있다. 이 영화에서 군산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와 곧 헐릴 판자촌과 이제는 완전히 퇴락한 항구가 있는 상실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중심과 대비되는 주변, 변두리의 모습이고 주류와 다른 마이너리티의 처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군산의 모습과 군산 지역의 이미지는 매우 다양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지는 낭만적 장소로서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도박과 음모와 협잡이 있는 도시 공간으로서의 항구도 있다. 조직 폭력배와 유흥가, 기지촌과 미군부대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군산은 낡은 항구와 다 쓰러져가는 빈민가가 도시의 쇠락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군산의 도시 이미지는 이런 이미지들이 모두 중첩되어 탄생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군산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원한다면 이제 군산이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이렇게 형성된 배경과 과정에 대해 모두가 숙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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