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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정은해 선임기자
- 4분 걸림 -

고대 범어에서 윤회는 수레바퀴를 뜻했다
선선에서 윤회란 목숨을 빚진 사람은 반드시 다음 생애라도
목숨을 구해준 이에게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이었다
중국의 연나라에서는 연꽃 속에서 영원히 몸 섞는 연인이라는 뜻이었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한 거란의 떠돌이 부족에게는
그녀는 죽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찾으러 나선다라는 뜻이었다
유마경에 나오는 향기의 나라에서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다라는 뜻이기도 했다 어쨌든,
기원전 그리스의 한 상인이 서역을 지나간 적이 있다
그의 목적지는 윤회였다
불꽃과 얼음의 거대한 산을 넘어 먼지의 집들을 지나, 그는
서역의 한 작은 오아시스에 만들어진 나라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적어도 그가 다섯 번은 태어나기도 전의 사람들이
그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태껏 아무런 빚도 지지 않고 살아왔다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다섯 번을 태어나는 동안 네 번의 죽음에 빚을 지고 있었군요”
침착해라 변하지 않는 형상이란 없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렇게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어
어디로 가든 결국 네가 만나는 것은 바로 너 자신이니까

윤회는 다 아시다시피 수레바퀴륜(輪)자와 돌아올 회(廻)자로 이루어진 말이지요. 첫행에 나와 있듯이 고대 범어에서 윤회는 수레바퀴를 뜻했고, 구체적으로는 생명체가 나고 죽는 것이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되풀이된다는 불교적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미혹하여 번뇌를 일으키고, 번뇌로 말미암아 온갖 업을 지으며, 그 업에 따라 돌아가며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고 하지요. 윤회는 결국 인과응보의 사유와 맞물려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윤회에 대한 제각기 조금씩 다른 독특한 의미 부여입니다. 가령 선선이라는 서역의 오아시스 국가에서는 목숨을 빚진 사람이 다음 생에서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중국 연나라에서는, 연꽃 속에서 영원히 몸 섞는 연인이라는 에로틱한 의미가 담겨져 있답니다. 그리고 거란의 한 부족에게는, 그녀는 죽었지만 나는 그녀를 찾으러 나선다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불교 경전인 유마경에서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다는 뜻이라고도 한다지요.
이와 같이 윤회에 대한 다양한 의미 부여는 그만큼 인간의 삶의 불가해한 면모를 반영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생각해보면, 윤회라는 사유 자체가 현실의 생과는 다른 생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한 번의 생으로 다 하지 못한, 그래서 한 번의 생으로 그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작품의 후반부에서, 윤회를 찾아 나선 한 상인의, 아무런 빚도 지지 않고 살았다는 자부심은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적어도 다섯 번을 태어나는 동안 네 번의 죽음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제행무상이라는 불교의 진리는 이 작품의 말미에서 “변하지 않는 형상이란 없지”라는 단언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불교적 가르침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변하며, 그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시공간은 헛될 뿐이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은 언제나 누추하고 비루한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디로 가든 결국 네가 만나는 것은 바로 너 자신”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그토록 욕망하고 번뇌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동안, 결국은 끊임없이 나 자신과 마주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윤회라고 이 시는 말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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