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년 간의 언론사 활동을 통한 짧은 회고록
벌써 올해도 끝자락에 다다라 어느덧 다시 공기가 차가워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한 학기를 마무리한 지 오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절반이 넘어가는 시기인 11월. 분명히 엊그제 입학하고 눈만 깜빡인 것 같은데도 시간은 금세 흐르고 만다. 그 틈에서 그동안 잃은 것도 많고,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유독 일이 많은 해였다. 수능이 끝난 후 하려던 수많은 계획들은 전부 접어버린 채 무력하게 누워서 겨울을 나기만 했던 게 내내 후회로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입학 후에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손만 대놓은 일이 많아서 그런 건지. 나 자신이 자기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사람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학교 안팎으로 계속 무언가를 했다. 그중에서 가장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건 글을 쓰는 일이다. 잘은 못 써도 꾸준히, 매일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글을 쓰자고 다짐했다. 언론사에 들어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써보지 않던 글을 써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을 남에게 보여 주는 게 무서워 감추던 태도를 바꿔보기 위해서.
처음에 쓴 기사는 단신이라는 짧게 팩트만 전달하는 기사의 유형이었는데, 편집국에 꽤 늦게 들어온 나는 제대로 된 기자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로 기사를 써야 하는 상황이어서, 결국 대충 어림짐작만 하다가 제대로 뜻을 검색해 보고서야 기사를 썼던 것 같다. 짧게 간추려 내용을 전달하는 건 누군가에겐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잘 몰라서 헤매다 마감이 다 돼서야 쓰기 시작했고. 마감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쓴 짧은 기사가 지면에 실렸다. 신문이 발행될 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처음에는 뿌듯함에 좀 신나는 게 먼저였고, 그 다음에는 창피한 감정이 뒤따랐던 것 같다. 누구한테 보여 주는 글은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를 교정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 외에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기사를 나 다음으로 정기자나 선임기자, 교정기자에게 보여 줄 때도 그런 감정이 생겼다.
방학을 거쳐 새 학기가 시작된 후 두 개의 신문을 더 발행한 뒤에도 기사를 보여주는 건 어색하고, 어려웠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초고를 작성하는 건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고, 그걸 보여 주는 것 역시 생각이 많아지는 일이다. 그래도 처음보단 나아진 점이 있다는 게 조금은 변화된 면 아닐까. 조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눈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도 내 글을 보여 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그래서 언론사에 들어온 게 일단은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뭔가 제대로, 정확하게 알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인터뷰도 해 주실 수 있느냐’ 묻는 것부터 말할 수 있고, 평상시에 쓰는 글이 전보다 조금 더 매끄럽게 써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글’에 조금 더 가까워졌단 생각을 한다.
득이 많은가, 실이 많은가 하고 굳이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면 나는 득이 많다고 대답하고 싶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보다야 나은 삶인 건 분명하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계속 그 자리에 멈춰 있기만 하니까 말이다. 기회도 잡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에게 오듯이 앞으로도 어떤 기회가 생긴다면 그걸 잡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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