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객(歌客)
송재학
그는 강을 건넌다
이번에 아내를 데리고 올 건가
몇 년 만에 그는 뼈마디 썩는
깊은 병을 안고 돌아온다
강은 범람을 넘보며 검붉은 혀를 널름거린다
절망만이 부적처럼 보이자
누군가 신발을 벼랑가에 벗어두고
몸을 던진다
집 없는 여자가 아이를 버리고
유곽으로 숨어버린 해
상류의 비로 강은 범람한다
경전을 안고 벼랑에
절이 세워진다
다리를 자르고 그는 경을 읽는다
말은 사라지고 광기에 매달리는 오랜 가뭄
사람들은 소를 잡아 피를 뿌린다
절을 불태우며 그를 붙잡는다
이미 제 목을 친 그의 노래를
푸른 달빛 속에서 듣는다
노래는 밤을 삼킨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도, 분명한 인과관계의 논리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소설과 같은 어떤 서사적 정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흔히 서사적인 서정이란, 일정한 서사의 정황을 갖고 있으면서도, 중심 맥락은 어떤 정서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를 일컫습니다.
이 시에서 ‘그’라는 인물은 상당히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낸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는 병이 깊습니다. 누군가는 몸을 던지고 또 누군가는 아이를 버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스스로 유폐된 삶을 택하게 됩니다. 그가 벼랑에 절을 세우고 다리를 자르는 행위는 이처럼 스스로 택한 단절과 유폐를 끔찍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가뭄에 흉흉해진 민심은 그를 붙잡아 피의 희생을 치르려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예측을 벗어나는 반전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미 제 목을 스스로 친 다음입니다. 진정한 노래란 그렇게 절망의 극한에서 제 목을 친 다음에 나오는 것이랍니다.
제목의 가객은 글자 그대로, 전문적으로 노래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원래 가객이라는 용어는, 조선 후기에 풍류 삼아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창하던 민간 음악인을 지칭하던 말이었는데요, 오늘날로 치면 가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에서 가객은, 뜻을 좁히면 전문적인 소리꾼이겠지만, 원래 시라는 장르가 노래와 함께 한다는 점에서 시인으로 볼 수도 있고, 확대하면 모든 예술가들을 지칭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우리는 작품 속에 나오는 그의 기구한 삶 자체보다는, 그러한 운명적 상황에서의 어떤 절박한 정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노래라는 것은 이처럼 절망만이 부적처럼 보이는 절박함의 극한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지요. 가령 우리는 전문 가수의 노래와 우리 어머니들의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전문 가수의 갈고 닦은 기교의 노래보다 어머니가 흥얼거리는 처연한 노랫가락이, 음정 박자 다 틀리더라도, 때로 더 우리 가슴을 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그 흥얼거림 속에 삶의 온갖 질곡을 겪어낸 절박함과 절실함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정말 절박하고 절실해야 할 것은 예술보다도 우선 우리 인생이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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