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에도 북한에서는 6차 핵실험을 강행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평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었다. 결국 ‘전쟁’만이 이 휴전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고 ‘평화 통일’이라는 단어는 기억 속에서 지운지 오래였다. 그런데, 그랬던 날들이 단 한 번의 계기로 완전히 역전돼버렸다.
지난 4월 27일,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10년 6개월 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린 일이었다.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표어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6.25 전쟁의 종전과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성큼 다가서는 계기로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그 과정 가운데 남북정상회담 저녁 만찬 중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 건배사 일부가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지나온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제 가야할 우리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고 우리 앞에는 부단히 새로운 도전과 장애물들이 조성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사소한 두려움을 가져서도 안 되며 또 그것을 외면하고 피할 권리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체가 그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역사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순간부터 몇몇 사람이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어쩌면 대신하기 싫었거나 힘든 일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사소한 일을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소한 일이지만 내가 해내는 경험을 쌓아놓아야 중요한 순간에 꼭 빛을 발하는 용단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말은 우리의 성장을 지연하고 정체시키는 말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결실을 얻어낸 것은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던 대한민국 국민 5천만의 총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줄 때 우리 사회는 톱니바퀴처럼 제대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었다. 반대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마다 우리는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들이 하나의 장(長)을 맡았을 때 그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한편, 지난 1일 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내 변화의 물꼬는 트여졌다. 우리 군은 오후 2시 경기 파주 오두산 일대 민간인 통제구역에 설치돼있던 대북 확성기를 철거했다. 북한은 우리보다 앞서 같은 날 오전부터 최전방 지역 확성기를 철거했다고 한다. 이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을 실천한 것이다. 또한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의 장’으로 거듭난 판문점이 언급되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얼어붙은 땅에 봄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긴 겨울을 감내해야만 했는가. 어렵게 온 만큼 이 평화가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은 욕심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염원일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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