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 애프터> : 보편, 심오의 주제가 안이한 판타지를 만났을 때
여기(히어), 삶이후(애프터)엔 뭐가 있을까? 기억과 자각 및 추론의 주체로서, 인간에게 부질없지만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질문에 헐리우드가 합류하고자 한다. 영화『히어 애프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접하는 사람들을 영국, 미국, 프랑스라는 서구사회의 대표적 공간에서 소개하면서, 이 모호하면서도 보편적인 주제를 밀고나간다.
시치미를 딱 떼고 병렬적으로 전개되던 3인의 에피소드는, 각자가 별개의 사정으로 런던의 북페어 행사장을 방문하게 되면서, 비로소 동선이 겹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들은 죽음에 관련하여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아울러 영화는 조용한 직설화법으로 정중히 말한다. 중요한 것은 ‘히어 애프터’가 아니고 ‘히어 나워’라고! 그리하여 그 심령술사에게 애절하게 매달리던 외로운 아이는, 그로부터 ‘나를 찾지 말고, 내가 되어 스스로 살아라’는 형의 메시지를 전해 듣고 마침내 현재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심령술사는 죽음의 인식이 현실생활에 대해 가지는 긍정적인 힘을 깨닫고 그를 전파하고자 파리로부터 달려온 그녀를 만나, 자신의 새로운 사랑과 초능력의 축복을 예감한다.
『히어 애프터』는 진지하다. 그리고 정교한 구성의 윤곽을 갖추고 있다. 서사는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표현은 매우 적절하다. 대작가 ‘클린트 이스티우드’의 낙관을 선명히 드러내며 영화는 그렇게 고품격의 면모를 시종 유지한다. 그러나 그 정교한 구성의 한 축에 상당한 균열을 보이며 영화는 진행된다. 바로 부적절한 판타지의 주입으로 인한 문제이다. 개연성에서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인물의 개성과 처지를 드러내며 어느정도 스토리의 활력을 보태던 이점을 발휘하기도 하던, 이 신비주의적 요소는 급기야 클라이막스에서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결정적인 매체로 활용되면서, 작품에 대해 전체적인 손상의 임팩트로 작용하고 만다. 상대의 두 손만 잠깐 잡아봄으로써 중요 인물의 죽음을 접하고 또한 망자의 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던 우리의 주인공은, 그 심령술의 능력을, 형제를 잃은 외로운 영혼을 치유하는 데 사용하고야 만다. 이 씨퀀스 자체는 비록 ‘맷 데이먼’의 자연스럽고도 집중력 있는 연기에 의해 우아하게 전개되지만, 결국 제작진의 설교가 일방적이고 직선적으로 ‘그저 서술되고 마는’ 퉁명스러움을 발휘하는 정도에 그친다.
역설적이게도 『용서받지 못한 자』로 마카로니 웨스턴과 일회성 폭력물로 점철된 자신의 과거를 충분히 용서받은 이후, 인기배우 ‘클린트 이스티우드’의 영화판에서의 ‘히어 애프터’는 거장에 의한 완성도와 심오함의 세계로의 여정이었다. 이제 80을 넘긴 이 노작가의 관심이 ‘생을 넘은 차원’에 닿아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의 원숙한 통찰력이 결국 같은 문제로 씨름하게 될 인생후배들에 대한 유용한 안내서로 작동할 것이며, 때로 그 가르침은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고무적인 메시지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차후에 그로부터 제공될 지혜는, 그가 예의 그러하였듯이, 인생에 대한 냉정하고도 균형잡힌 분석과 그것의 정교한 서사에 기초하기를 바란다. 이번에 의기투합하여 제작을 맡은 스필버그 사단의 ‘피터팬 증후군’에 오염된 섣부른 낙관주의와 판타지의 과용에서 한 발치 비켜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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