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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리꾼인가, 가해자인가

박사랑 선임기자
- 4분 걸림 -

 지난 14일, 한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죽음의 원인이 무분별한 ‘악성 댓글’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연예인은 악성 댓글, 일명 악플로 인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한 사람만의 고충이 아니었다. 수많은 스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입에 담기도 힘든 댓글들을 읽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목숨을 스스로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거대 포털사이트와 SNS가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내세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댓글망국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온라인 댓글 수준은 심각했다. 최근 사망한 연예인의 생전에 관한 기사만 봐도 인격모독과 더불어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갖가지 욕으로 댓글 창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연예인은 무엇보다 인기가 중요한 직업이기에 다른 직업보다 타인에게 노출의 범위가 넓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감을 품고 악플을 단다. 연예인들이 사회적으로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누리꾼은 단순히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풀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악플을 단다고 답했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댓글을 안 달아본 사람이 있을까? 나 같은 경우는 악플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심각성은 인지하지 못했다. 악플로 가득 찬 댓글 창을 보면서 눈살은 찌푸렸지만, 그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끔 악플러에 시달리다가 소송을 걸었다는 기사를 보면 ‘잘됐다’ 생각하고 넘기는, 한마디로 ‘방관자’였다. 내가 악플에 대한 심각성을 느낀 계기는 최근 이 사망 사건에 달린 악플을 봤었을 때다. 악플로 인해 자살한 고인에게 또 악플을 다는 누리꾼, 나는 이제 그들이 더는 누리꾼으로 보이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문 뒤에 숨은 가해자로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문 뒤에는 방관자인 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으로 어떤 형태로든 원하는 경우 개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권리이다. 하지만 악플로 인한 자살 사건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의견은 대부분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한쪽은 애초에 악플을 예방하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한쪽은 온라인에서라도 마음대로 의견을 표현해야 한다며 앞서 언급한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다.

 어느 쪽이든 나는 누리꾼들이 하나의 댓글을 달더라도 자신이 말하는 바가 비판인지, 비난인지 구분했으면 좋겠다. 비판은 근거가 뒤따른 주장이지만 비난은 일방적인 주장. 즉, 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일은 잘못된 것을 보고 말을 하지 않는 방관자도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방관자가 가만히 있다면 악플은 더욱 심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에 대해 당당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법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 이 속담의 뜻처럼 상대에게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이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까? 내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흉기이며 이는 곧 마음의 흉터로 남을 수 있다. 무대에서 누구보다 빛났지만, 이제는 하늘을 빛내주는 별이 된 그들. 그곳은 악플 없는 곳이길 바라며 황룡담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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