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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임법과 ‘-세요’

김의한 선임기자
- 4분 걸림 -

한국어는 높임법이 발달한 언어이다. 높임법은 특정 인물을 말로써 대우하는 문법적인 장치이다. 여기에서 특정 인물은 의사소통 과정에 참여하는 인물을 가리킨다. 곧 ‘화자(말하는 이)’, ‘문장의 주어로 표현되는 인물’, ‘문장의 목적어나 부사어로 표현되는 인물’, ‘청자(듣는 이)’가 그들이다. 우리는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인물을 적절하게 말로 대우해 주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한다.
그런데 화자 스스로를 높이는 언어 표현은 타인과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화자를 높이는 언어표현은 없다. 한국어에서 높임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인물은 문장의 주어로 표현되는 인물과 청자(듣는 이)이다. 문장의 주어는 ‘-시-’를 써서 높이고, 듣는 이는 ‘하십시오, 하게, 하오, 해라, 해, 해요’ 등의 다양한 언어형식으로 상황에 맞게 대우한다.

(1) 가. 저 분[주어]이 우리 아버지세요.
    나. [주어 생략] 어디 가세요?
(2) 가.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혈색[주어]이 좋으세요.
   나. [점원이 손님에게] 손님, 이 넥타이[주어]가 잘 어울리시네요.
   다. [학생이 선생님에게]선생님, 감기[주어] 드셨어요?

문장의 주어로 표현된 인물과 듣는 이를 모두 높일 경우, (1)처럼 ‘-세요’를 쓴다. 그런데 (2)에서 문장의 주어는 각각 ‘혈색, 넥타이, 감기’이다. 인물이 아닌데도 ‘-시-’가 쓰이고 있다. 비록 주어가 인물은 아니지만, 높여야 할 인물의 신체의 일부이거나 높여야 할 인물에 속한 것일 때에는 ‘-시-’를 써서 그 소유주를 높인다. 이를 간접높임이라 한다. 그러나 요즘 특정한 상황에서 이러한 간접높임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쓰는 현상이 발견된다. 특히 은행, 음식점, 편의점, 대형 마트 등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업계에서 고객이 찾는 물건을 높임으로써 고객을 높이려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3) 가.(은행에서) 고객님, 이게[주어] 이번에 나온 신상품이세요. 이 펀드는[주어] 기대수익률도 높고 안정적이세요.
    나. (옷 가게에서) 그 사이즈[주어]는 하나 남으셨어요. 3개월 무이자 할부[주어] 가능하시고요. 환불[주어]은 안 되세요.
    다. (음식점에서) 메뉴에는 ○○○[주어]이 있으십니다. 주문하신 음식[주어] 나오셨습니다. 요금[주어]은 ○○○원이십니다.

(3)의 각 문장은 ‘-시-’를 빼야 자연스럽다. 문장의 주어가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3)을 소유물이나 신체의 일부를 통해 소유주를 높이는 간접높임이라고 할 수도 없다. (3가)의 ‘이것, 이 펀드’, (3나)의 ‘그 사이즈(의 옷), 할부, 환불’, (3다)의 ‘○○○(음식명), 음식, 요금’은 높이고자 하는 인물인 고객에 속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 쓰임의 확대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서비스산업 중심 사회에서 고객을 잘 접대하여 이득을 얻으려는 언어 전략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의 이러한 쓰임은 아직까지는 낯설고 어색하다. 특정한 상황에서만 쓰일 뿐 아직까지 일반화되어 쓰이지 않는다. 고객의 입장에서 ‘주문하신 음식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과 음식(사물)이 동격으로 취급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3)과 같은 표현은 원활한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므로 아직까지는 바른말로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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