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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諷刺)

김의한 선임기자
- 4분 걸림 -

프랑스는 다른 국가들보다 정치풍자가 활성화 돼 있고 수위가 높은 나라로 유명하다. “정치인들이 프랑스 미디어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프랑스에서 정치풍자가 얼마나 다반사로 일어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 매체의 정치부 기자 디디에 포르트는 총리가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심하게 아부하는 모습을 비꼬면서 “총리님, 총리님, 우리 총리님 그래요 핥아주세요 핥아주세요 우리 대통령을 핥아주세요 나는 사르코지에게 똥침을 놓을 테니 그 대통령을 핥아주세요”라는 말을 해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풍자는 해고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로 포르트의 해고는 무효화 됐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수위는 조금 약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드디어 18대 대통령이 당선됐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된 박근혜님 잘들어. 당신이 이야기 했듯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 기업들을 위한 정책, 학생들을 위한 정책, 그 수많은 정책들 잘 지키기 바란다. 하지만 절대 코미디는 하지마라. 국민들을 웃기는 건 우리가 할 테니, 나랏일에만 신경쓰기 바랍니다.”

용감한 녀석들의 개그맨 정태호가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개그 프로그램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개그콘서트 출연진은 앞의 대사가 방송된 후 방통위로부터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다. 방통위는 처분의 이유가 대통령 당선인을 대상으로 훈계조로 발언한 것과 “잘 들어”, “지키길 바란다”, “절대 하지 마라” 등의 반말을 사용한 것은 시청자에 대한 예의와 방송의 품위 유지라는 차원에서 다소 부적절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방통위의 행정 지도 이후 용감한 녀석들은 시청자들에게 코너의 막을 내릴 것임을 알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용감한 형제들의 정치풍자에 대한 방통위의 조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개그맨의 풍자가 왜 잘못된 것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대통령에게 훈계하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런 의견과 함께 심기가 불편해진 박 대통령 측의 외압 때문에 KBS가 용감한 녀석들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정말 외압이 있어 개그맨의 풍자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코너의 폐지 시기와 박 당선인에 대한 풍자 시기가 우연히 맞아 떨어져 괜한 오해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 달 25일 진행된 취임식을 시작으로 박 대통령은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게 됐다. 박 대통령이 소위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는 고지식한 사람”이 아닌 풍자를 풍자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과 자신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 대탕평을 실현할 수 있는 통큰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장 · 김의한

han@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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