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연주자, 페이지터너

음악회를 감상할 때, 피아노 연주자의 옆을 보면 연주자가 아닌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연주자에 가려져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존재인 ‘페이지터너’다. 이번 황룡iN에서는 숨은 연주자로 불리는 페이지터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페이지터너란?

페이지터너(page-turner)는 ‘넘순이’, ‘넘돌이’로 불리기도 하는데, 독주자나 피아니스트 등이 연주를 할 때 악보를 넘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독주를 할 때는 보통 악보를 외우기 때문에 페이지터너가 필요 없는 경우도 많으나,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실내악, 피아노 연주 등에 관해서는 악보를 보며 연주해야 할 때가 많아서 페이지터너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피아노 연주는 연주 자체의 속도도 빠르고 기교도 많이 들어가서 연주자가 악보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 페이지터너가 함께 공연에 임한다.

연주자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연주자의 왼편 뒤쪽에 앉으며, 왼손으로 악보의 오른쪽 위의 모서리 부분을 잡고 넘겨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페이지터너가 무대에 대놓고 드러나진 않지만, 그들의 실수가 공연 전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실력에 따라 공연의 성공과 실패가 나뉘기도 한다. 때문에 페이지터너는 ‘숨은 연주자’라고도 불린다.

페이지터너가 지켜야 할 공식?

페이지터너는 무대 위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연주자보다 튀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무대에 오를 때는 보통 검정 옷을 입고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입·퇴장하지 않고, 적당한 간격으로 뒤따라가야 한다. 연주자가 관객의 박수를 충분히 받을 수 있게 하고, 페이지터너는 객석에서 울리는 박수에 답례를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악보를 넘길 때 빼고는 움직이면 안 된다. 연주자를 건드리거나 악보를 넘길 때 소리를 내는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악보를 너무 빠르게 넘기거나, 너무 늦게 넘기면 연주의 흐름을 끊어 연주를 망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악보를 넘기는 타이밍의 정확도와, 악보의 이해를 위한 음악적 지식, 음악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도 페이지 터너의 중요한 요구 사항 중 하나이다.

자동 페이지터너

자동 페이지는 연주자가 페달을 밟는 것에 의해 조작되는 기계다.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10만 원 안팎에서부터 수백만 원까지 가는 제품도 있다. 저렴한 제품이 존재하는 만큼 자동 페이지터너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것은 연주자에게도 유용한 기계지만, 장애인을 위해서도 사용이 많이 된다. 예를 들어 독서를 할 때 책을 넘기기 힘든 장애인에게 악보처럼 넘겨 줄 수 있어 유용하게 쓰인다.

페이지터너가 주는 시사점

영화 <페이지 터너>의 감독인 드니 데르쿠르는 ‘페이지 터너의 역할은 일종의 자기 소멸’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무대 위의 또 다른 연주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연주에 없어서는 안 될, 꼭 있어야 할 사람이다. 어느 시대에도 사람들을 구원하는 영웅이나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스타는 등장하게 되는데, 그러한 영웅과 스타는 저절로 탄생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그들을 키워주는 인물이 필요하다. 영웅과 스타는 빛나지만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그 빛을 쉽게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그 무엇보다 값지고 아름답다.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을 존중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