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추억, 그 경계선 사이를 지나
무더운 여름의 더위가 지나고, 어느덧 파란 가을 하늘과 붉은 단풍이 캠퍼스를 물들였다. 나는 이번 황룡담을 읽는 독자들이 개강 후 지난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는 독자들이 지난 학기를 토대로 이번 학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보내려 하는지, 지나간 시간에 남겨진 여운이 우리의 가슴 한 켠에 여전히
오피니언은 기자칼럼과 독자투고, 그리고 황룡담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더위가 지나고, 어느덧 파란 가을 하늘과 붉은 단풍이 캠퍼스를 물들였다. 나는 이번 황룡담을 읽는 독자들이 개강 후 지난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는 독자들이 지난 학기를 토대로 이번 학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보내려 하는지, 지나간 시간에 남겨진 여운이 우리의 가슴 한 켠에 여전히
끝없이 올 것 같았던 비가 그치고 9월이 찾아왔다. 방학은 마침표를 찍었고 다시 달려야 할 가을이 시작됐다. 시작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다고 하지만 봄과 가을의 시작은 다르게 느껴진다. 봄은 계주의 첫 주자로 누구도 밟지 않은 트랙을 개척하는 느낌이라면 가을은 전 주자의 바통을 이어받아 그 땀과 속도를 토대로
나에겐 고등학생 때부터 했던 다짐이 있다. ‘이번 방학은 정말 알차게 보내야지.’라며, 종강을 맞이하기 전부터 방학을 알차게 보내고자 매번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바쁘게 한 학기를 지내다 보면 종국에는 놓쳤던 것들이 많았었다는 아쉬움에, 학기 중에 미쳐 못다 한 일들을 방학 때는 이루고자 했다. 대외활동, 자격증, 토익 등 여느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모두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고 단언하며 살아왔지만, 최근 나에게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했다. 어려운 과제에 부닥치거나, 당장 급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될 때, 무심코 ‘내일의 내가 하겠지?’ 생각하고는, ‘내일의 내가 하겠지.’라며 마침표를 찍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미뤄진
초등학생 때 나는 매일 저녁 꼬박꼬박 일기를 쓰곤 했다. 물론 어린 나이에 자의로 썼던 일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나에게 일기란 과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공원을 돌며 맡았던 아카시아 꽃냄새, 엄마와 함께 심은 가지 등 모든 것이 새로웠던 하루의 일과는 매일 밤 적는 일기의 새로운 주제가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파릇한 새내기 시절, 한 교양 수업에서 앞으로 있을 대학 생활 동안의 목표를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수습기자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사 활동 : ‘장’ 들어간 직위 해보기>라는 귀엽고도 야망 있는 목표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 목표가 언론사를 대표하는 ‘편집장’을 저격한 말은 아니었다.
▲ 변채원 수습기자 지난해 9월, 언론사 수습기사 및 방송인력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언론사 기자 모집 공고 글을 전에도 보았지만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언론사에 지원하게 되었는데, 지원을 다짐한 이유에는 어렸을 적 꿈이 아나운서였다는 점이 컸다. 어렸을 적,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모습에 반해 방송과 관련된 일을 하고
항상 한 해의 마지막 달은 유독 애틋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맘때쯤 되면 지난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와 스스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되돌아보며, 속으로 인생과 자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하곤 한다. 눈이 조금씩 내리던 얼마 전, 나는 함께 걷던 친구에게 대뜸 “너는 네가 너인 것에 만족해?”라고 물었다. 스스로에게만 하던